brunch

Day 02. 대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리 손→ 론세스바예스 18km (08,15)

by 신미영 sopia


우린 오리손 산장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커피를 우유와 설탕을 넣어 대접에다 마시는 게 특이하다. 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들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론세스바예스에 보낼 동키를 마무리하고 나와보니 안개비가 내렸다. 그런데 갈수록 비가 굵게 내려 배낭에서 판초를 꺼내 입고 단단히 무장하고서 출발을 했다.


오늘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산맥 중턱부터 오르막이라 힘들었다. 가파른 오르막은 아니지만 지그재그로 적당히 경사를 만들어 가야 하므로 중간중간 오르막은 피할 수 없었다. 올라갈수록 안개비가 더욱 거세지고 바람도 거칠다. 손이 시리고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걷기 연습을 하기는 했어도 평지를 걷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급경사에서 걷는데 자꾸 숨이 가쁘다. 그리고 갈증이 심해지며 목이 타는 느낌이다.


걷는 길에는 소똥까지 즐비하다. 낭떠러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걸 보니 아찔하다. 발을 삐끗하면 수백 미터 계곡으로 떨어질 것 같아 두렵고 소름이 끼친다. 소들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자연 방목에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피레네를 오르는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걸었다. 비가 오니 더 을씨년스럽다.


가다 보니 인터넷 네이버 카페 까. 친. 연(까미노 친구들의 연합 모임)에서 사진으로 봤던 트럭이 보였다. 순례자들의 간식거리와 세요을 찍어준다는 특별한 푸드트럭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잠깐 따뜻한 커피로 썰렁함도 녹일 겸 세요 Sello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증명용 스탬프)도 찍을 겸 해서 푸드트럭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간식으로 커피와 삶은 달걀, 바나나를 사서 요기했다. 사장님이 우리가 한국 사람 같은지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사해서 깜짝 놀랐다. 한국 순례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배웠다고 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1325미터이고 론세스바예스는 7.4km 더 가야 하며 2시간 5분 걸린다는 안내판이다. 돌긴 해도 좀 더 완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걸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라는 경계 지점에 샘물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대서사시 ‘롤랑의 노래’ 주인공 롤랑이 마셨다는 그 샘물이다. 생장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던 스페인 마드리드에 산다는 마리아 부부를 그곳에서 만났다.


다른 분들도 만나서 서로 웃고 사진도 찍고 하며 잠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점점 깊어지는 피레네의 길은 마치 고생대에 머무는 착각이 들 만큼 원시림에 가깝도록 신비했다. 안개에 가려진 구불구불 나무들과 능선 위로 반쯤은 나무들이 빼곡하다. 그 위쪽으로는 야생화들이 다양하고 예쁘게 피어 있었는데 정말 보기 좋았다. 험난한 산맥을 걷다 힘들어 지칠 때쯤 40년 만에 이 길을 걷는다는 하와이에서 온 쥴리아를 다시 만났다. 좀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도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길은 지그재그로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가파르지만 질러가는 길을 걷기도 했다.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와이 자매님이 멀리 론세스바예스가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그 자리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전에 다녀갔기 때문에 알고 계심이 분명하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인가 보다. 힘들어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에구 다리 아파, 당신도 힘들지? 언제 저곳까지 걸어간담”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무슨 행사가 있나 보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다른 사람들도 저곳을 향하여 가고 있다. 내리막 길을 걸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먼저 도착한 배낭을 찾아 숙소로 올라왔다. 론세스바예스의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다. 오래된 성당을 개조해 만든 알베르게로 큰 홀에 80개가 넘는 2층 침대를 갖추고 있다. 숙박비용은 12유로이고 수용인원은 183명이다. 숙박비용에는 알베르게, 저녁,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접수부터 안내까지 자원봉사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알베르게 1층에는 순례자들의 신발을 보관하는 신발장이 따로 있고, 지하에는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는 따뜻한 방도 있었다. 방에 들어와 짐을 풀었다. 세탁실에 가서 사용료를 내니 세탁과 건조까지 해주어 편리했다. 휴식을 취하며 알베르게 주변 구경을 했다. 순례자들이 꽤 많다. 한국 순례자를 만났다.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네이버 카페 까. 친. 연(까미노 친구들의 연합 모임)에서 정보를 얻어 혼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경남 창원에서 왔으며 20대 중반의 예진이다. 또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녁 6시 전에 성당에 갔다.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한국과는 좀 달랐지만 거룩한 미사였다. 특이한 것은 미사보( 천주교 미사 중에 여성 신자가 머리에 쓰는 수건)를 쓴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7시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순례자 메뉴는 코스 요리로 맛도 괜찮고 푸짐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일반적인 순례자 메뉴는 산티아고 순례자에게 저렴하게 제공되는 요리로 10유로에서 15유로 정도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국 사람을 또 만났다. 김해에서 회사 퇴직하고 사업 준비 중인 신현식이다.
옆자리에 러시아에서 온 순례자가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 남편과 같은 세례명인 미카엘이라고 한다. 65세로 군인 출신이고 산티아고 순례 4번째라고 한다. 대단하신 분이다. 이틀째 순례도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오늘 우리가 넘어왔던 피레네 산은 거대한 생태공원이며 산맥 전체가 방대한 자연 목장으로 신비스러웠다.


숙소는 네 명씩 잘 수 있게 칸막이가 있다. 다른 외국인 부부와 나눠 사용했고 우린 131호 132호였다. 그리고 샤워 시설은 남녀가 구분 없이 사용하고 편의시설은 아주 좋았다. 피레네를 넘느라 힘들고 피곤했던지 정신도 모르고 자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한밤중에 한 번 깼다.

피레네 중턱의 푸드 트럭
론세스바예스 국립 알베르게 순례자 무덤

피레네 산맥 고지 까미노 안내 표지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