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 감독 박찬욱, 배우 이병헌, 배우 손예진/ 139분 상영
&. 스포일러 포함
영화 < 어쩔 수가 없다> 주인공 유만수 (배우 이병헌)와 이미리 (배우 손예진)의 주연 영화라서 기대하고 보게 되었다. 게다가 알려진 배우들이 여러 명이 나오고 차승원도 출연을 했다고 해서 내용이 궁금했다. 집안의 가장이 실직을 겪으면서 재취업을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공감하며 볼 수 있겠다 싶었다. 9월 24일 개봉을 했음에도 이튿날 영화관에 갔더니 앞부분만 빼고 거의 자리가 찼다. 그만큼 사람들도 기대를 하면서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사실 충격적이었다.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라는 건 어떤 상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끔찍한 살인 앞에 재취업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아무리 그게 가장의 무게라고 해도 말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은 1997년 발표된 작품으로, 구조조정과 실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한 가장이 생존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은 2005년 프랑스에서 영화화된 바 있으며, 박찬욱 감독은 이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재해석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원작의 결말은 주인공이 모든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스템의 무자비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역시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더욱 절박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현대 사회의 생존 논리와 인간성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는 회사에서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애완견 두 마리와 사춘기 아들, 바이올린을 하는 딸, 그리고 예쁜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던 한 가정의 만수는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고 괴로워한다. 아마 이런 분들이 주변에 꽤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절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은 살인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그건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을 표적을 삼아 설인하는 행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목이 잘려 나가는 충격에 괴로워하던 만수는 가족을 위해 재취업을 하겠다고 벼른다. 1년을 넘게 마트에서 일을 하며 면접을 전전하지만, 살던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취업하고자 <문 제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찾아가 사정해 본다. 하지만 '선출' 박희순 반장 앞에서 심한 모욕을 당한다. 제지회사 <문 제지>의 자리가 제격이라는 확신이 갖게 된 만수는 가짜 구인광고지를 만들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3 사람을 정해서 그들의 뒤를 미행하고 집안까지 들어가고 차례로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영화는 마치 잔인하게 사람 죽이는 비법을 가르쳐 주는 듯했다. 이영화의 주인공들이 최고의 배우이고 인기 있는 배우들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급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끔찍했다.
가장의 실직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것을 몇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실직을 당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첫 번째 살인 대상의 아내와 만수의 아내의 외도를 보게 된다. 문제의식이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외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살인에 비하면 그건 아주 소소한 일로 비쳤다. 스토리의 흥미와 인기를 위해 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살인은 주인공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제지 전문가 구범모를 살해한다. 두번째는 죄의식을 갖지 않고 당연하게 끔찍한 일들을 버젓이 하고 사람들의 사체를 집으로 가져와서 절단한다. 그러고 나서 스펀지를 접듯이 줄로 묶어 정원에다 묻는 모습도 사춘기 아들이 옥상에서 지켜보았다. 몰래 그것을 목격하게 아들은 큰 총격에 빠지고 그래도 다행히 엄마에게 말을 했다. 컴컴한 밤에 엄마 이미리는 나무 밑에 사체를 확인했다. 큰 충격은 받았지만 아들에게는 사람은 아니고 돼지였다고 말해 줌으로 조금은 안심을 갖게 해 주었다. 영화는 이런 끔찍한 장면을 찍으면서 배우들은 얼마나 웃고 떠들고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살인은 더 끔찍했다. 집으로 찾아가 같이 술을 마시고 마치 술을 먹다가 자살을 가장한 것을 연출했다. 술이 챈 중에 그를 비닐랩으로 묶어 얼굴만 내놓고 땅에 묻었으며, 다시 얼굴을 풀어 살아있는 상태에서 생고기를 갈아 깔때기를 이용해 먹이는 숫법을 자행했다. 정말 끔찍한 모습이었다. 다시 사체를 집안으로 끌고 가서 그가 먹다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 일도 보여 주었다.
만수는 경쟁자들을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나 끔찍한 모습으로 죽였다. 결국 그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러나 요즘은 로봇이 일자리를 대신하고 만수만이 회사 안을 돌아다녔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대부분의 일자리들을 로봇이 해내고 사람들의 일자리는 없어진다는 사실을~ 그랬다면 다른 대안을 찾았으면 좋았을 걸 왜 경쟁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따지고 싶다. 그것도 유명한 배우들을 통해 모방범죄를 하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무섭고 끔찍하다. 점차 괴물로 변해가고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과 인간성의 붕괴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가족을 위한 생존과 사회적 압박, 자기 합리화의 산물임을 보여준다는 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결코 아닐 것이다. 주인공이 원하는 자리에 재입사하지만, 그 성공의 기반은 피로 얼룩져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영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함과,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질문을 던진다. 원작 소설 ‘액스’와 달리, 한국적 현실과 가족 부양의 책임, 구조적 모순을 강조하며,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어쩔 수가 없다’는 살기 위한 살인을 합리화시키며 평범한 가장의 극단적 선택과 그 이면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잔혹하게 그려냈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이 얻은 건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우리 사회의 병들어가는 모습과 점점 타락해 가는 것만 같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