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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 - 세비야 성당, 리스본 수도원, 파티마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여행 (10월 9일~10월 20일)

by 신미영 sopia

8일 차 타라파, 세비야성당. 알브페이라

우리는 새벽까지 시끄러웠던 모로코 탕헤르호텔에서 숙식하고 일찍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왔다. 타라파에 도착 후 2시간 30분 버스를 타고 세비야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보석, 열정과 낭만의 세비야 도시는 플라멩코, 오렌지향. 황금빛 정열의 축제로 유명한 도시이다. 중세시절 무어(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공존했던 곳으로 이국적인 건축과 화려한 역사적 유산이 공존한다. 이곳에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세인트폴에 이어 세계 3대 세비야 성당이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슬람 사원(모스코)이었던 자리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건축기간은 1402년~1506년까지 약 100년에 걸쳐 지어졌다.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와 무데하르 양식까지 여러 가지 혼합된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내부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는데, 스페인 왕국 네 명의 왕이 관을 들고 있는 것으로 조각된 웅장한 모습이다. 이날 우리도 콜럼버스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중앙제단은 황금으로 장식된 36개의 패널에 예수의 생애가 새겨져 있고, 화려한 금빛 찬란함에 압도될 정도이다. 합창석 자리는 정교한 조각으로 꾸며져 르네상스 예술의 걸작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날 종탑에는 다른 걸 보는 건 포기하고 부산에서 온 9살 예은과 40대 초반의 부녀가 다녀왔다.

스페인 세비야 성당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카사 데 라 메모리아 같은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면 진짜 정열적인 안달루시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번에도 선택관광 중 플라멩코 춤 공연이 있기는 했으나 신청자가 적어서 성사되지 못했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 플라멩코 댄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TV로도 많이 봤기 때문에 스페인 특유의 열정적인 춤의 모습이 그려진다. 춤을 추는 모습의 마그넷도 있어 구매 가능하다. 우리는 세비야 스페인 광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선택관광을 신청한 분들은 마차를 타고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부지런히 주변을 살피며 도로를 걸었다. 이*경 가이드가 앞장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으나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세비야 거리와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좋았으나 피곤하고 다리도 아팠다. 가이드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더 가야 한다고 해서 살짝 후회했다. '편하게 마차를 타고 갈 걸' 하고 말이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걸어갈 길은 멀고 난감한 상태였다. 그래도 참고 걸어서 드디어 세비야 스페인 광장까지 왔다. "에구~ 힘들어라~ ㅠ " 13,000보를 걸었다. 이래서 나이가 더 들면 '여행이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비행기도 타야 하고 하루에 만보는 기본으로 걸어야 하니 말이다. 아직은 괜찮지만 앞으로 여행을 10년 정도는 부지런히 다니려면 좀 더 체력을 갖추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리가 아프고 체력이 떨어지면 가고 싶어도 못 갈 테니 말이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

이후 한국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로 돼지 불고기와 미역국을 먹었다. 특히 미역국은 보리새우와 들깨가루를 넣고 미역과 함께 들기름으로 볶아 국물이 진했다. 불고기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설탕으로 맛을 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짠 맛이다. 게다가 멀리 타국 스페인 세비아에서 잔치상에 올라오는 귀한 잡채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 음식은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늘 먹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역시 우리 입맛에는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고 맛도 좋다. 반찬이 간단했으나 미역국과 김치, 잡채, 감자채 볶음 반찬으로도 충분했다. 안주인 분도 찾아와 친절하게 인사하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반찬도 더 갖다 주었다.

한식 고추장 불고기와 미역국

9일 차 포르티망. 리스본 제로니모스 수도원, 원조 에그타르트

우리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있어서 입맛에 맞게 먹으면 된다. 우리는 이날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칼칼하고 뜨근한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서이다. 집에서 같으면 아침에 라면을 먹는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지만 해외에 나가면 라면은 최고의 메뉴이다. 이날도 컵라면에 물을 끓여 붓고 볶음 김치와 먹으니 환상적이었다. 호텔 조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지만 간단하게 커피와 빵을 먹었다.

호텔 조식뷔페

조식 후에 자유시간이 주어져 포르티망 해안가로 갔다. 해변이 넓고 길어서 산책하기 좋고 해수욕, 패들보드. 요트 타기 등 다양한 해변 스포츠가 가능하다. 석양명소로 유명해서 저녁에 사진 찍기 좋다고 한다. 이날 <배나길 동굴> 선택 관광이 있었으나 날씨 관계로 취소되었다. 포르티망 인근 선착장에서 출발 예정이었던 <배나길 동굴>은 알가브르 해안의 대표적인 해식 동굴로 빛이 들어오는 천장 구멍이 특징이라고 한다. 해안 절벽과 다양한 암벽 그리고 동굴 경관이며 배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관광이 필수이다. 일반적으로 2~3시간의 투어를 하게 된다. 이번 선택관광 상품중 가장 비용이 컸다. 취소되는 바람에 아쉽기는 했으나 돈을 아끼는 계기도 되었다. 한참을 내려가 백사장을 걸었다. 양쪽에는 바위가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 더욱 좋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현지인들도 있어 보기에 좋았다. 파도가 세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우리와 함께 온 일행이 멀리 동굴처럼 보이는 바윗 쪽으로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길래 뒤따라 갔다. 동굴 같은 바위에서도 사진을 찍고 바위 위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며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과 함께 사진에 담았다. 40분 정도 시간이 흘러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캐리어와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포르티망 해안가

이후 우리는 리스본으로 향했다.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유럽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중에 하나로 포르투갈의 심장이자 대서양을 향한 문이다. 언덕과 트램, 타일,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도시다. 누군가는 조용하지만 깊은 정취가 있고, 음악의 슬픔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일곱 개의 언덕에 세워진 도시로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 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중 하나이며 1755년 대지진 이후 현재의 도시 모습이 형성이 되었다고 한다. 대서양과 맞닿은 태주강 하구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햇살이 많아 '햇빛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도시의 풍경은 언덕, 트램, 붉은 지붕, 푸른 아줄레주(타일), 이 어우러져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스페인의 넓은 도시와는 다르게 집들과 도로의 길이 아기자기하다. 이곳 해변에 내려 사진을 찍었으나 우리는 모로코에서 먹은 양고기로 인해 화장실을 가느라 일행과 떨어져 근처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주변에는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포르투갈 도착후

근처에 제로니모스 수도원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장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곳도 알려 주어 사진을 찍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리스본의 벨렘 지구에 있다. 이 수도원은 바쿠스 다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하기 전 항해의 성공을 기원하며 기도했던 장소로 유명하다. 건축기간은 100년 이상이 걸렸으며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수도원 외벽과 회랑은 세밀한 조각과 섬세한 문양으로 꾸며져 있어서 '돌로 만든 레이스'라고 불릴 정도이다. 내부에는 거대한 석기 기둥이 천정까지 이어진 성모마리아 성당과 2층 구조의 아름다운 정원과 회랑 복도가 유명하다고 알려졌으나 우리는 외관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1983년 바벨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포르투갈 리스본 제로니모스 수도원

제로니모스 수도원 근처에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라는 에그타르트 원조 집이 있다. 당시 수도사들이 달걀흰자는 수도복 세탁 등에 사용하고 남은 달걀노른자로 디저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1820년대 리베랄 혁명으로 수도원이 문을 닫자 수도사들이 그 레시피를 근처 설탕 주인에게 판매했고 그 주인이 1837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에그타르트보다 겉바속촉 즉 겉은 더 바삭하고 속은 더 촉촉한 맛이고 표면에 불로 살짝 태운 듯한 브라운 컬러이다. 따뜻할 때 계핏가루와 슈거파우더를 살짝 뿌려서 먹는 게 전통방식이다. 10년 전에도 와서 먹었던 에그타르트를 오늘도 먹을 시간을 준다고 해서 줄을 서서 기다려 4개를 샀다. 역시 원조의 맛은 다르다. 이래서 원조를 찾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포르투갈 원조 에그타르트

성모발현의 기적 파티마 성지를 가다

우리는 버스로 이동거리가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파티마 성모성지로 향했다. 천주교 신자로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번에 파티마를 간다고 했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티마는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한 성지이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 중심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포르투갈 중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리스본에서 약 130km 떨어져 있다. 파티마 성지는 성모 발현의 기적이 일었난 장소로 전개과정은 이러하다. 1917년 1차 세계 대전으로 세상은 전쟁, 폭력, 증오로 고통받고 있었다. 1917년 5월 13일 세 명의 어린 목동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 앞에 성모마리아가 처음 발현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의 발현을 통해 성모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라. 하느님께 마음을 돌려라"라고 당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죄 많은 세상을 향한 자비의 손길로 해석된다. 그중 '태양의 기적'으로 불리는 현상은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 저녁에 도착하여 파티마 성지 부근 호텔에 짐을 풀고 5분 정도 걸어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에서는 성모발현 100주년 묵주를 판매하였는데 16유로라고 했다. 어차피 파티마성지를 갈 거라서 묵주는 구경만 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가이드와 함께 다시 5분을 걸어 파티마 바실리카 성당으로 걸어갔다. 양쪽 거리에는 성물을 판매하는 곳들이 즐비했다. 일단은 함께 성당으로 향했다. 바실리카 성당에 들어서자 광활한 성당의 마당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광장이 넓고 웅장한 성지는 없었고 최고의 규모인 듯했다. 저녁 7시 30 분쯤이라서 어둑어둑했지만 성모발현지에 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순례자들이 무릎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저렇게 하다가 무릎 관절이 손상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정말 대단한 신심을 가진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와 같이 온 분들과 멀찍이서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가이드는 숙소로 돌아갔다.

성모발현 성지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

우리는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성물방이 문을 닫기 전에 주변 가게로 가 보았다. 가서 보니 살 것들은 많았으나 선물하기 가장 좋은 묵주를 골라 샀다. 향기로운 향기가 나는 묵주였다. 나무로 된 튼튼한 묵주는 아니어도 이곳을 대표하는 묵주이기에 바로 구입해서 돌아서 나왔다. 배도 아프고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아서 건물 쪽으로 갔다. 한참을 걸어 가 뒤쪽으로 가는데 앞서서 걸어가는 가족이 있어 뒤따라 갔다. 하지만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고 물어보니 돌아서 가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 돌아가니 경비하는 분들이 문을 닫을 테니 본관 쪽으로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래서 뒤쪽으로 걸어 왼쪽에 화장실을 다녀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묵상하고 계신 분들이 보였다. 우리도 기도를 마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성당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성당 마당에 초를 갖고 묵주기도를 같이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니 손에 촛불을 갖고 있었다. 남편이 촛불을 판매한다는 곳에서 4개의 초를 사 와 한쪽에서 '우리 가족의 영육 간 건강을 위해' 촛불을 켜서 봉헌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옆쪽으로 이동해 보니 이미 자리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갈수록 유럽에는 많은 성당들이 문을 닫고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고 들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도 전에 성당 건물이었던 곳이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파티마 성지에 와보니 천주교 신자에 대한 자긍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모여서 함께 간절히 기도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어딜 가나 가족과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파티마 성지는 2007년에 완공된 현대식으로 최대 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이다. 처음 성지에 들어서면서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멀리 보이는 본관이며 성지 정원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까지 본 성당 중에 최고 규모이지 않을까 싶었다. 건물은 단순하지만 엄숙한 디자인으로 대규모 미사나 국제 행사 때 사용된다고 한다. 전에 주변 사람들 중에 이곳에만 순례 와서 기도하셨던 분들이 생각났다. 열흘정도 머물면서 미사와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았을 텐데 잠깐 와서 머물고 가려니 아쉽긴 했다.

파티마 성당 촛불 봉헌과 야간 묵주기도

자리에 앉을까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비워 두라고 해서 다시 나왔다. 9시가 넘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난 다리가 아파 체면 불고하고 옆쪽 남은 공간에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9시 15분이 되자 모두에게 촛불을 점화하며 신부님들이 여러 명이 기도를 시작했다. 묵주기도를 시작했고 총 5단을 한다.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으로 이루어진 기도이다. 1단을 하는데 깜짝 놀랐다. 한국말로 하는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너무도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정말 이곳에서 한국어로 묵주기도를 들으니 감동이 되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우리는 5단을 바칠 때 그곳에서 걸어 나오며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행렬을 이어갔으나 우리는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5시에 출발해야 해서 숙소로 향했다.


매년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전 세계 순례자들이 맨발 또는 무릎으로 기도하며 성지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무릎으로 기어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 있었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무릎이 몹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파티마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희망과 평화, 회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을 사랑했다고 한다. 1981년 피습 이후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탄환을 파티마 성모님 왕관에 봉헌하셨다. 성모님은 발현할 때마다 세 목동에게 "매일 묵주 기도를 바쳐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것은 하느님과 멀어진 세상 속에서 다시 믿음과 사랑으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부르심일 것이다. 그래서 파티마는 기도의 성지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지순례를 하는 것 같다. 갈수록 세상이 복잡하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회개하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이다. 파티마 성지를 다녀가는 것이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제4부 스페인, 톨레도, 마드리드 프라도, 마요로 광장은 11월 7일 오전 11시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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