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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oooong Feb 05. 2022

우성사우나 모범생


결국 듣고야 말았다. “손님은 모범생이네요.” 목욕탕 이발소 사장님의 칭찬에 뿌듯했다. 모범생이라 불리고 싶었던 행위였음을 고백한다. 공중도덕, 목욕탕에서 일부러 하는 나의 행위를 늘어놓자면,


다음 사람을 위한 관심, 내가 앉았던 목욕탕 의자와 썼던 대야는 잘 헹궈서 제자리에 놓기, 내 자리 거울 닦아놓기, 내 자리 주변 물로 씻어놓기 따위.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날카로운 나사못이 위험하다 싶어 관리하는 분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하기. 나만의 뿌듯한 양심을 위한 것도 있다. 물론 온전히 나만의 만족이다. 수건 한 장이면 내 몸을 닦는데 문제 될 일 없다. 발 닦는 수건은 남이 쓰고 통에 넣어둔 깨끗한 수건으로 대신한다. 함께 쓰는 욕조에서는 몸 가만가만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 출렁거리는 물살 만들지 않기. 일회용은 사지도 쓰지도 않기, 목욕탕 가방이 필수다. 목욕탕 관리하는 분들에게 소리 내어 인사, 탕 내에서는 가벼운 목례로 안부를 묻는다. 동네 어르신 만나면 부러 목소리 크게 안부 여쭙기. 유쾌한 일은 어르신들 수다를 귀 기울여 듣는 일, 이게 은근 재미난 일이다. 건강과 돈, 대충 주제는 이렇다. 요즘은 대선 후보 흉보는 이야기도 나누는 것 같지만 멀리하려 한다. 탕 속에서 십여 분 눈 감고 고요하게 몸 담그는 시간이 좋아, 목욕탕 단골이 되었다.


이젠 안다. 목욕탕만의 일정한 순서와 흐름이 있다는 것. 부지런하신 동네 어르신들은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입장하는 것 같다. 아직은 내가 첫 손님이었던 적은 없다. 그들의 수다는 시끌벅적, 주제도 여러 갈래다. 대여섯 분 탕 속에 몸을 담그기도, 걸터앉아 대화를 이끄는 분도, 말하는 일에 애쓰는 분도, 듣는 일에 신경 쓰는 분도, 목욕탕 사장님도 그 수다 자리의 우수 고객이다. 고객관리 차원을 넘어 꽤 정성스레 함께 즐기고 있다. 한 시간 남짓 지나고서야 죄다 퇴장, 몸 씻는 건 사실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 씻는 일, 목욕탕 이른 새벽 첫 손님들만의 특권이 아닐까. 그다음 순서가 내 입장시간이다. 분주한 소리가 물러나면 잠시 고요가 찾는다. 몇 분 안 되지만 대체로 목소리 대신 몸 움직임이 눈에 띄는 사람이다. 혼자 운동하는, 사우나에 들어가는, 씻는,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는, 혼자들만의 시간인 셈이다.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드나들고, 몸 구석구석 때를 밀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거센 물줄기에 등허리 맡기고, 가만 몸을 뉘어 쪽잠을 청하는 이도 있다. 그들이 물러날 시간이다. 더운 몸 잘 달래서 가볍게 몸 식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달착지근하다.


어른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 생길지도. 퇴장하는 어르신 몇 분의 이야기가 귀에 걸려들었다. 들린 이야기만 요약하면 이렇다. 나이가 들면 건강을 위해 여러 종류의 약, 영양제를 챙겨 먹게 된다. 누가 좋다더라, 라는 소문에 솔깃해서 그 가짓수가 또 늘었으니, 남용에 대한 나름 진지한 말씀이었다. ‘합’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내 몸 마음의 기운과 맞는, 내 즐겨 먹는 음식과 맞는, 내 습관에 맞는 합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대신 잘 살펴 먹는 내 몸이 반응하는 그 약과의 합, 찰떡궁합이란다. 점잖은 말씀의 태도가 나름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난 말씀이었다. 물론 되레 해가 될 때 많더라, 것도 잘 살펴 헤아릴 것에 대한 당부였다. 다 앎 직한 이야기 아니던가.


목욕탕 일기 끝.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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