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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qrie Nov 29. 2024

2017년, 그 해 우리는 ... 그리고

(2023.3.1)

어느 해나 그렇듯, 2017년에도 우리 주변에 아주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렇게 흐르듯 지나갔다.

정치적으로는 역사 이래 처음 있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이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물린 개신교의 크고 작은 사건들도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시절가운데 가십 기사처럼 잠시 소개되었다가 사라진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사건이 영화화되어 소개되었다. 개봉한지 한달 쯤 되어가지만 흥행 성적은 손익분기점(30만명?)에 한참 모자른다고 한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관심의 대상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감상의 흔적을 남겨본다.  


영화의 "소희"는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주류 세계의 인물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아이였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으며, 가족에게 조차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크고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영화의 결말처럼 그 해결은 실마리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처럼 살고 있는데 그 결말이 바뀔 것이라 믿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영화가 상영된 이후 감상평에 달린 댓글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유독 중간중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들이 섞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힘든 현실을 몸소 겪어낸 것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문장을 접하며, 그들이 이제라도 용기 내어 짧은 한 줄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그 영화 "다음 소희"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럽고 추한 현실을 살아내는 것도 힘든 일인데, 영화에서 조차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 힘들 것 같다는 의견에도 충분히 공감하다. 정치는 엉망이 되었고, 경제는 나락이 무엇인지 실체를 드러내고 있고, 종교의 탈을 쓴 무리들의 협잡과 만행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할 지 두려움만 커질 수 밖엔 없음은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영국의 현실을 한 토막 제대로 그려냈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2017년 무렵 관람한 그 영화에서 국가는 여전히 군림하고 있고, 약자들의 연대는 너무 느슨하여 힘이 되어 주기에 미약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은 서로를 도우면 사랑하라 하신 그 분의 말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씁쓸한 현실에 스러지고 마는 미생(未生)들이지만 말이다.


2017년을 끝으로 사라졌던 "김혜자도시락"이 다시 시장에 나온다고 한다. 훈훈한 뒷이야기까지 퍼지며 "혜자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도시락 미담이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정책 실책은 사실조차 전달되지 않는다. 세금 허투루 쓰는 일이 비일비재한 지금, 이 땅에서 어떤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인가 되뇌이지만 희망마저 버릴 수 없음 또한 되새길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다음 소희"가 오랜 기간 극장에서 상영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 영화의 내용을 곱씹어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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