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칙이라면 모를까.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나오는 춘장에 찍어 먹는 생양파에는 손도 안 대었다. 옆에 있는 단무지만 가끔씩 집어먹을 뿐이었다. 아재 입맛을 보유한 까닭에 점심 메뉴는 순댓국으로 정했다. 거리가 조금 있어 오랜만에 방문한 백암순대 집에서 늘 먹던 순댓국을 시켰다. 역시 기본이 가장 맛있다. 순대도 백암 순대가 대여섯 개 들어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오전부터 배가 고팠던 터라 밑반찬으로 나온 생양파를 된장에 찍어 와그작, 첫 시도였다. 매우면 한 입 먹고 안 먹으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양파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달았다. 분명 아무 양념이 되어있지 않은 생양파였는데 달다니. 양파가 달게 느껴지는 나이가 된 건지, 단지 기분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몇 개를 더 먹으며 생양파는 매울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시도해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했던 순간들이 내 인생에는 얼마나 많았을까?
어쨌든 하기로 했다.
무슨 일이 됐든, 해보지도 않고 말아 버리기엔 내가 너무 젊다. 나에게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 좋아하는 일에는 파고들어 깊게 빠진다. 나도 몰랐던 뜻밖의 재능이나,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에겐 요리가 그랬다. 평생을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다 자취를 시작하고 요리에 도전했는데, 레시피를 보지 않아도 꽤 맛있었다. 많이 먹어봐서 그런가 나조차도 신기한 날들이었다. 내가 하면 맛이 없을 거라는 편견은 옳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관계에 있어 그 사람은 그럴 거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겠지라고 단정 짓지 말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 속이다. 어떻게 나올지는 직접 부딪쳐봐야 안다. 어느 날 문득 자발적으로 도전한 생양파가 달았던 게 우연이라도 좋다. 어떤 양파는 맵지만, 내가 먹은 양파는 달았으니 그걸로 됐다. 오늘의 경험으로 나는 다음에 또 생양파에 도전할 것이다. 매우면 매워보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