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오고 가는 칠천여 리 사이에 하루도 좋은 구절과 글자를 다듬으려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선 중기 명문장가였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실린 ‘야출고북구기(夜出高北口記)’의 한 구절이다. 200여 년 전에도 글 쓰는 사람의 자세는 지금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는 문장이다. 살아 숨 쉬는 동안 마음속에 좋은 글, 바른 사상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살았으면서도 그는 같은 글에서 문장의 성취가 쇠약하고 나약하여 보잘것없다고 자신을 낮춘다.
「열하일기」는 8촌 형인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칠순 생일 축하 사절 대표로 중국에 갈 때 연암이 동행하면서 겪은 갖가지 경험을 소개한 글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대부분 태어나 죽을 때까지 조선 땅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연암은 사신의 일행으로 청나라 수도 연경 땅을 밟았을 뿐만 아니라 만리장성 이북의 열하까지 가는 특혜를 누렸다. 연암의 호기심과 학습 욕구 때문에 이 경험은 더욱 특별한 것이 되었다.
사절단 일행이 찌는 더위와 거센 폭우를 뚫고 연경에 도착했건만 황제는 여름 별장인 열하로 가 있었다. 열하로 오라는 황제의 전갈을 받고 일행은 황급히 다시 말을 달린다. 열하에 가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의 가장 험한 관문인 고북구를 통과해야 했다. 연암은 한밤중에 홀로 말을 타고 가다가 고북구를 지난 후 장성의 위용에 압도되어 말을 세운다.
달빛에 비친 다섯 겹 장성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는 그 순간의 감동을 기록하기 위해 붓과 벼루를 꺼낸다. 한밤중에 물을 구할 수 없으니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장성의 벽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자를 크게 쓴다. 이때 연암의 심정이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은 아폴로 우주인들의 심정과 비슷했을까?
어딜 가든 말안장에 벼루와 붓을 매달고 다니다가 글을 쓰고 싶을 때 그것들을 꺼내서 쓰는 연암의 모습과 현대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오늘날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글쓰기를 위한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진다. 스마트폰은 자료실인 동시에 기록장이고 실시간 전송이 가능한 우체국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이렇게 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글쓰기를 싫어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 책을 '수북수북' 도서로 선정한 이유는 고전 평론가 고미숙이 이 책을 두고 ‘18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라고 평했기 때문이다. 운영진을 포함한 회원 모두가 이 책은 처음 읽는 것이라서 우리는 이 여행기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한지 궁금했다.
책의 첫인상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편저자들이 정성 들여 편집하고 시각 자료도 많이 첨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회원들은 끈기를 가지고 독서하여 이 책 속에 숨은 보물을 찾아냈다. “인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둔다”라는 연암의 말처럼, 이 책은 페이지마다 명문장을 숨겨놓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세심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같은 문장은 그의 깊은 학문과 사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열하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물과 사건을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기술했다는 점이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이 책이 당대 문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저자는 본인이 이미 알고 있던 지식 위에 동행인들, 특히 말을 모는 마두들과 중국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덧붙여 중국이라는 무채색 그림에 화려한 색을 입혔다. 고미숙은 이를 일컬어 ‘지금 여기의 살아 숨 쉬는 글쓰기’라고 했다. 평생 조선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연암의 글은 외국 특파원의 현장 보고 역할을 함으로써 그들의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행적이나 타인과의 대화를 기술할 때는 우스갯소리를 빠트리지 않는 유연함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물을 설명할 때는 날카로운 혜안으로 객관적, 이성적인 기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감성과 이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의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일천이백 리에 걸쳐 펼쳐진 요동 벌판에서 하늘과 땅 사이 탁 트인 경계를 보고 연암은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라고 외쳤다. 이 대목은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지만 빼어난 문장과 사유가 돋보이는 명문이라서 호곡장론(好哭場論)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회원들과 함께 연암이 말한 울음의 의미에 관해 토론해 보았다. 동행인이 연암에게 갑자기 통곡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나 노여움, 즐거움과 사랑,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된다고 그는 대답한다. 연암은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말하는데, 편저자 중 한 명인 고미숙은 이 울음을 “태초의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경이로움에서 나온 존재론적 울림”이라고 설명한다. 한 회원은 이 문장을 읽을 때 닐 암스트롱이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서 자신이 한 경험 중 최대치의 경험을 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이 순간은 지식인을 옭아매고 있던 틀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고 말한 회원도 있었다.
우리는 중국 문물을 그림 그리듯, 때로는 동영상으로 찍듯 사실적이고 익살맞게 표현한 연암의 관찰력과 글솜씨에 놀라고, 곳곳에서 만나는 가볍지 않은 문장들 앞에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고문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우리 선조들의 글에 무관심했던 점에 대해 모두 반성했다.
이날 모임의 가장 큰 감동은 나이로 막내인 회원이 독후감에 쓴 말이었다. “과연 나에게도 박지원처럼 마음을 터놓고 생각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는가? 바라기는 '수북수북' 모임이 나이에 상관없이 그런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연암에게는 매일 밤 어울려 다니며 학문과 인생을 논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북학파로 알려진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 등이 그들이었다. 서로에게 지적 자극을 주며 집단지성으로 작동한 그들처럼 우리 독서 모임도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훌륭한 지식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