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Sep 03. 2023

빨치산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해방일지』독후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소설은 아버지의 인민 해방 투쟁을 엿보게 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이념의 굴레에서 서서히 해방되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는 자기 삶에서 해방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는 시종일관 우스갯소리 하듯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평생 진지충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면서, 한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남도 사람 특유의 이야기 방식이다.


    울거나 화를 내도 모자랄 상황에서 아버지가 내뱉는 사회주의적인 언사는 언뜻 코미디처럼 들리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그 말에 수긍한다. 아버지가 처음 보는 방물장수 여자를 집에 데려와 딸 방에 재우려고 하는 것을 어머니가 반대하자 아버지가 하는 말이,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이다. 그 말에 ‘허리가 아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밖에 내놓지 않았던 어머니는, 찬장에 고이 모셔둔 새 접시까지 총동원하여 당신으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했다, 민중에게.’ 8.15 해방 후 당위원장까지 지낸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언제나 설득당하고, 두 사회주의자의 대화를 엿듣는 딸은 포복절도한다. 

    또 자기 농사를 망치면서까지 이웃집 사위의 교통사고를 수습하러 갔던 아버지가 시신을 병원까지 태워 간 택시비도 되돌려 받지 못한 것을 안 딸이, “아버지의 민중이 그렇지 뭐” 하며 비아냥거리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오죽했으면 글겠냐? 그것도 못 주는 맴은 오죽하겄어?”라고 사회주의자다운 대답을 한다. 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딸도 엄마도 말문이 막힌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문제는 아버지의 사회주의가 가장 노릇 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는 데 있다. 길고 긴 감옥생활을 마친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답게 농업을 생업으로 택했는데, 문자에 대한 맹신으로 농사일을 『새농민』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글로 배운 농사를 하는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는 속이 타서 “새농민이 언제 김을 매라고 하면 풀이 암만, 허고 그때꺼정 잘도 지둘레 주겄소. 새농민이 뭐라거나 말거나 풀이 나면 난 대로 뽑아야제. 워디 농사가 문자로 지어진답디까?”라고 잔소리한다. 어머니의 예상대로 아버지의 문자 농사는 번번이 망했다.

    누구나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무색하게 자기 세 식구가 먹을 양식을 버는 것조차 버거워한 아버지, 머리로는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일상에서는 그 ‘주의’를 따르지 못했던 아버지는 딸의 비웃음을 산다.      물론 아버지를 비웃는 화자의 마음이 편치는 않다. 화자는 아버지의 빨치산 전력 때문에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소시민적 개인주의를 멸시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닮은 자신을 보면서 실소(失笑)하기도 한다. 화자는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비하하지만, 자신에게 사회주의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화자가 아버지를 희화화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사실은 화자를 포함한 온 집안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 그들이 이 사회에서 가슴 펴고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화자에게는 아버지가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웃음거리로 삼으면 아버지와 같은 부류로 취급받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죽마고우인 박한우 선생이 평생 교련 선생을 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한 심리를 진심인지 방어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처럼, 그녀가 현실주의자를 자처한 것도 진심인지 방어인지 잘 모르겠다. 박한우 선생의 형과 누나는 지리산 빨치산으로 지리산에서 죽었는데 박선생 자신은 국군에 입대하여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로 차출된 사람이다. 그는 빨치산과 교전할 때 자기의 총알이 친구와 가족을 죽일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래놓고도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던 이유는 비겁함 때문일까, 책임감 때문일까.   


    화자는 사상적으로 상극이었던 아버지와 박선생의 우정을 통해 아버지가 이념의 노예로 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라는 아버지의 말은 언젠가부터 그가 사상 따로 사람 따로의 융통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이념은 아버지에게 아내나 남편과 같은 것이어서 절개를 지켜야 하는 대상이었으리라. 사회주의 이념과 결혼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사랑을 변치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했을 뿐, 그 사상이 젊었을 때와 동일한 열기로 아버지를 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수컷으로서의 본능이 구분되지 않아서 실비집 여자 궁뎅이를 두드리기도 하지만, 그 일로 성내는 딸을 보고 아버지 노릇의 무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버지라는 거이 이런 건 갑다, 산에 있을 적보다 더 무섭다”라는 말로.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젊은 아버지는 민중을 사랑했을지언정 부모 형제나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을 하찮게 여긴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딸을 낳고 기르면서 인간의 도리를 배운 것이다. 


    그러나 자기 혈육뿐 아니라 인간 일반을 신뢰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젊을 때나 늙어서나 한결같았다. “사람이 오죽허면 글겄냐”라는 아버지의 십팔 번 대사를 상기하면서 딸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키운다. 이것이 사회주의자도 혁명가도 아닌 평범한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휴머니스트라서 존경했다. 휴머니즘은 단어의 형태와 달리 어떤 '이즘'이나 '주의'가 아니라 모든 '이즘', 모든 '주의'가 흘러드는 바다와 같은 것이다. 진정한 해방을 맞이한 작중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나도 내가 무슨 '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오직 휴머니스트라서 아이들의 존경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다. 이와 항꾼에(함께) 내 아이들도 저 혼자만 잘 살려고 하지 않고 다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매를 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