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언니 Aug 26. 2024

켜켜이 쌓이는 관계

'아트백'으로 만난 사이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오래 묵은 장맛이 훌륭하듯 숙성된 와인이 깊은 맛을 내듯.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변치않은 생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곁에 있는 한결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2010년 ‘단 하나의 습관만들기’ 라는 ‘아트백’ 이라는 모임에서 만난 두남, 창연, 승미, 세정, 나. 이렇게 다섯은 팀을 이루어 ‘예체능팀’이고 이름짓고 각자의 습관을 이어나갔다. 글을 쓰고, 걷고, 기타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정신의 힘을 키우는 일이었다. 백일간 어떤 행위를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여전히 그 습관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100일간 뭔가를 한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10년째 띄엄띄엄 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에 만보걷기가 목표였지만 그래도 주 2-3회 정도는 걷는 습관을 놓치지 않게 된 것이 성과일까.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갖는 목표를 세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글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좀더 쉬워진 것. 기타를 매일 연습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었지만 기타가 아니라 다른 것을 더 원하게 된 경우.      


어쨌든 루틴을 만들어보자는 요즘 자기계발의 화두를 좀더 일찍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서른 초반이었고, 다들 비슷한 나이대였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종종 만나서 ‘정모’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근황을 나눴다. 이번에는 거의 5년만에 다 같이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 신기했다. 주말의 강남역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어딜 가나 앉을 자리 없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좋은 장소들을 잘 찾아내어 우리가 원하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타로를 보면서 얘기하고,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었다.      


집으로 오면서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는데 이런 구절을 찾았다.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가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를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나를 현재로 이끌어 준 모든 것이 소중하기에, 바로 과거의 ‘아트백’이 정말 소중하게 여겨진 걸까. 내 인생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사건, 경험이었지만 왠지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언젠가 내 인생이 끝날 무렵, 참 괜찮은 시간이었지라고 회상할 것 같은 일.      


12년 전 나는 여섯 살 재혁이 손을 잡고 서울역, 강남역, 대학로 등을 누비면서 공부 모임을 다녔다. 그 때 가끔은 아이가 거추장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고상하지 못한 내 모습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게임기를 들려주거나 먹을 것을 사 주어서 한 두 시간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 나는 강의나 모임에 조금이나마 집중할 수 있었다. 시끄럽게 방해할 때면 아이를 데리고 나가 혼을 내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나는 살았던 걸까. 배움과 성장이라는 화두를 놓쳐버리면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인생이 발전하지 못할 것 같은, 퇴보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뭘 그렇게 부여잡고 싶었던 걸까 싶다.      


그래도 흔들리는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주고, 함께 같이 할 것을 응원해주었던 사람들. 혹은 나를 조금씩 따라와 주었던 누군가를 통해 내 인생도 자라난 것 아닐까. 좋은 습관을 통해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과연 어떤 가치였을까 생각해본다. 더 나은 삶, 성공한 삶,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은 결코 아니다. 그저 내 인생이 질서있게 자리잡히게 되기를.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비심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신 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