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6학년 쯤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동네 놀이터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생크림 케잌을 사온 것으로 보아 둘 중 한 명이 생일인 것 같다. 상자를 열어 케이크를 꺼낸 후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성냥을 사용할 줄 모르는지 곤란해했다.
“아줌마가 불 붙여줄까?” 라고 말을 걸었다.
“네.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길래 가까이 다가가 케잌에 불을 붙여 주었다. 바람이 약간 불어서인지 성냥불이 금방 꺼져버렸다.
“안되겠다. 여기는 바람이 부니까 자리를 옮겨보자” 라고 말하고 셋이서 자리를 이동했다. 다시 성냥을 붙여서 초에 옮겼더니 겨우 불꽃이 살아났다. 초 12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아마 열두 살 생일 맞은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하는 것 같다.
“축하한다” 라는 말을 했더니 초가 붙어서 너무 신나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의식을 치루었다.
나는 그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명이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서 손을 모으고, 눈을 뜬 다음 촛불을 ‘후’ 하고 껐다. 둘이 얼굴을 마주치면서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워보였다. 친구를 위해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고, 놀이터에 앉아 깔깔대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유년 시절만 느낄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 이 세상에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얻은 것처럼.
나도 그 시절 좋아했던 친구가 있다.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추억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친구다. 과연 그 친구가 나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그 때에만 나눌 수 있는 감정이었으니까. 분명한 건 어떤 한 시절을 보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내 삶에 있었다는 거다. 그 친구들로 인하여 한 때 행복했고, 웃고, 설레었을 테니까. 보고 싶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일일이 언급하기 어렵다.
세상 속에서 자아를 펼쳐나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기이다. 당연히 곁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은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친구이다. 비슷한 처지에서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어 주는 존재이니까. 돈과 시간을 교환하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오롯한 시간이 바로 유년기의 우정을 가꾸는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는 소중하고, 우정은 잘 가꾸어나가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두 명의 여자아이는 케잌을 잘라서 함께 먹으면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했다. 무슨 얘긴지 알 수는 없으나 표정으로 보아서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저들의 우정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나도 조용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