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리나 Sep 07. 2018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

 이 책을 산 것은 한창 영화 <매트릭스>의 매력에 빠져 있던 2003년의 일이다.

서점에서 책을 발견하곤 기쁜 마음에 사서 단숨에 읽고 난 뒤, 오랫동안 방치해 놓았던 먼지 묻은 이 책을 꺼내서 다시 읽게 된 것은, 지난달부터 새삼스레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정체성에 대한 의문탓이었다. 기획 편집자로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날 괴롭히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 출판일을 소명으로 알고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항상 고민하게 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일까?

이 책은 17명의 철학자가 영화 매트릭스에 담겨진 다양한 철학적 메시지들을 파헤치고 명쾌하게 설명한 것을 모아 엮은 책이다. 우리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철학적, 종교적인 상징뿐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철학적 관념까지 속속들이 시원스럽게 밝혀주는 책으로 알찬 종합선물을 받은 듯한 뿌듯함이 있다.

저자들에 의하면 영화 <매트릭스>에는 아주 정교하고 의도적으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와 종교적 색채가 통합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여주인공 트리니티의 말처럼, 또는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니체 등이 했던 것처럼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의문들이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만 우리는 깨어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끝없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데카르트는 존재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결국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이 실체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매트릭스 안의 세상은 아름답지만 속박된 허구의 낙원이며, 지하세계는 어둡고 초라하고 불편하지만 실체하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해킹을 통해 우연히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존재에 대한 의심을 통해 주인공 네오는 실체하는 세계를 알게 된다.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 등의 ‘지하 생활자’들은 강요되고 억압된 행복 대신에 주체적인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다.

질병과 고통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물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없는 완벽한 세상에서 인간은 아무런 발전도 할 수 없고 진정한 자유도 누릴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불안, 고통, 내부의 분열로부터 성장한다.

책을 다시 읽고 났지만 역시 해결책은 없다. 다만 나는 하나의 위안을 얻을 뿐이다. 나의 실체에 대한 고민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고 정체성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내가 발전한다는 증거이며 내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네오(Neo)라는 이름에 숨겨진 뜻은 (the) One, 즉 바로 ‘그’ 사람 구원자라는 것이다. 또한 유일한 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나를 구원해 줄 사람(the one)은 바로 나 자신뿐임을 느끼며, 열심히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나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슬라보예 지젝 등저) 

작가의 이전글 시대를 앞서 살아간 불운한 천재 음악가, 에릭 사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