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건 내가 아니라

살아내고 싶었을 뿐

by 소라비

우유가 상했다

입에 넣자마자 알았다

시고 텁텁한 이질감

곧장 나를 탓했다

확인 안 한 내 잘못이지

유통기한 때문이라 여겼고


이상해도 삼킨 건

내 무심함


나중에야 보였다

팩 모서리의 작은 구멍

우유가 상한 게 아니라

상함을 입은 거였


창가에 남겨진 화분 하나

누렇게 마른 이파리

생기 없이 늘어진 줄기


물을 덜 줬나

햇볕이 부족했나

애초에 약한 씨앗이었나


그러다 또 나를 의심했다

역시 나는,

작은 식물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그 흙

이미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화분은 너무 좁았다


식물은 그저

자라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아내고 싶었을 뿐


뿌리내리고 꽃 피우는

오롯한 삶


누가 나를 상하게 했는지도 모른 채

나는 나를 의심하고

깎아내리고

자책하고

가끔은 나를 버렸다


내용물만 탓하지 마

원인이 꼭 그 안에만 있는 건 아니야


무르익지 못한 이유

우리 탓만은 아닐 수 있어


담긴 그릇이 문제였을지도

흙이

통로가

햇빛의 방향이


나는 분명 움트고 있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뻗어갈 수 없었던 것


그러니 무너질 때마다

자꾸만 자신을 해부하지 마


우선, 놓인 곳을 돌아봐

뿌리가 뿌리치지 못한 썩은 흙을

숨을 막던 공기를

그믐밤 같던 음지를


상한 건 우리가 아니

금 간 틀

뒤틀린 환경

막힌 구조 속


우린 그냥

그 안에 눌려 있었고


다시 심길 수 있을까


여전히, 그대로지만

그러나 분명한 건


내가 아니야


상한 건

내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