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어떤 대상이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시선을 잡아끌면, 다른 것들은 배경처럼 흐릿해져 버린다. 도도하게 핀 붉은 장미에 흠뻑 취해, 바로 옆의 들꽃을 놓치고 지나가듯이.
제체시온(Secession)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비엔나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혹시켰던 장소.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가 영구 전시되어 있는 그곳에서, 우연히 작은 씨앗 하나를 품고 왔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영감으로 빚어진 이 작품을 마주한 순간, 숨이 멎었다. 눈앞에 펼쳐진 미의 절정에 온몸이 떨려왔다. 대형 벽화 형태라 천장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구조인데,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한켠에 마련된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두 거장이 그려낸 황홀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내 안을 맴돈 건 베토벤 프리즈가 아니었다. 오히려 스치듯 보았던 바로 위층의 이름 모를 작가들과 그 전시를 가능하게 한 미술관의 '정신'이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To every age its art. To every art its freedom.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보석 같은 황금빛 돔을 얹은 제체시온 건물은, 기존 예술에 반기를 들고 새로움을 추구했던 창작자들의 이념이 깃든 장소다. 그날의 전시 역시 실험적이었다. 한 공간 안에서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자유가 꿈틀거렸다. 백여 년 넘게 이어온 제체시온의 도전 정신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도 묘한 감동이 일렁인다.
어쩌면 불후의 명작보다 더 귀한 건, 시간을 견디며 본질을 밀어내지 않는 고집스러움일지도 모른다. 잠깐 화제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끈기가 필요하다.
다양한 창작품을 아우르며 세월을 초월한 정신을 보전해 온 미술관의 철학이 점점 마음에 번져갔다. 비록 당시에는 장미에 도취되어 들꽃을 본 둥 만 둥 했지만, 그 모두가 피어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셈이다. 그렇게 제체시온의 정신은 내 안에 씨앗 하나를 심었고, 여전히 자라고 있다.
오늘날의 클래식인 베토벤 프리즈도 그 시절엔 저항이었을 것이다. 틀을 깨는 현재의 작품들 또한 언젠가는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 관습에 맞서는 열린 장을 기어코 전하고자 했던 제체시온의 본디 의지처럼.
결국 예술이 남긴 건 당장의 결과물 그 너머에 있는, 변함없이 곁을 지키고자 하는 태도였다.
나도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도록 간직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