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갈피

나를 아끼는 연습 중

by 소라비

인간관계를 떠올리면 저절로 저울 하나가 그려진다. 무게추를 더하고 빼며 균형을 맞추는 작업처럼, 맺고 끊기를 반복하는 과정. 사람과의 인연은 분명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다. 저울을 살피거나 추를 옮기다 보면, 핏 갈피 하나를 잡은 듯한 순간이 있다.


모든 만남이 상대적임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서로에게 두는 눈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내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지라도, 나에게는 그 사람이 줄곧 신경이 쓰이는 존재일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혼자만 지치게 된다. 기울어진 저울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다시 고르려고 애쓴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인연은 비슷한 무게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적당한 관심과 예의를 지키되, 과도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이 균형 잡힌 출발점을 나만의 기준값, '1'로 삼는다. 늘 출렁이는 게 관계다. 특별하다고 느끼거나, 실망하거나, 혹은 상황이 바뀌면서 '1'이라는 기준점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면 해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감정을 본래 자리로 되돌리면 된다.


물론 모두를 일률적으로 초기화할 수는 없다. 그간 애정과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온 인연들이니까. 굳이 원점으로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다. 깎고 보태며 비슷하게 조율해 가는 연습,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하다. 한 사람에게 쏠린 마음을 여럿으로 분산시켜 모두에게 유사한 무게를 실어준다면, 덜 부대끼고 더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겠다.


이 기준값의 개념을 가족에게도 적용해 보았다. 혈연의 특별함으로 가장 상위에 놓인 인연인 만큼, 희생과 강요가 끼어들 여지가 많다.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된 과도함을 적정선으로 끌어내리는 시도한다면, 조금 덜 얽매이면서도 더 성숙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정확히 '1'이 아니더라도, 압도적인 비대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예외도 있다. 대학 생활 내내 단짝이었던 친구 이야기다. 졸업 후 나는 취업을, 친구는 결혼을 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직장생활과 시험 준비로 바빴던 나, 남자 쌍둥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전념했던 친구. 너무나 달라진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연락이 끊겼고, 소중한 인연 하나를 잃었다. 이 경험으로 '기다려주기'를 배웠다. 삶에 큰 변화가 닥칠 때는, 혼란스러운 시기가 일상으로 가라앉을 시간을 넉넉히 주었어야 했다. 조금만 더 인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오래 남는다. 때로는 서둘러 맞추기보다, 한 박자 늦추는 것도 하나의 조절이다.


반대로, 아예 저울 위에 올려놓지 말아야 할 관계도 있다. 좋을 때는 한없이 가깝다가도 결국 앙숙으로 끝나버리는 패턴을 되풀이하거나, 친밀과 갈등을 반복하며 나를 소진시키는 사람들. 그런 인연은 나 또한 같은 방식으로 휘둘리기 쉽다. 건강하지 못하다면 과감히 끊어내거나 먼 거리를 둬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변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자기 성향에 맞는 연결망 안에서 무게를 적절히 다스리면, 덜 다치고 덜 의존적일 수 있다. 절박하지 않으면서도 다정하게,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신뢰를 쌓으며 편한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려면 작정한 대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매번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또다시 실패하리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관계들을 '1'로 되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기준값이라는 말이 매몰차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을 재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인연에도 여전히 진심을 다한다. 다만 이제는 나를 갉아먹는 인연들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나를 아끼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