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어 보지 않았다

'있음'의 진짜 힘

by 소라비

삶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는 나를 붙들어 둘 주문이 필요했다. 몇 해 전 그때는 ‘Move on’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얼거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제발 지나가기를 바랐다. 'Move on' 한 번에 들숨을, 다시 'Move on'에 날숨을 쉬며 어떻게든 버텨보려 애썼다.


요즘은 또 다른 주문을 마음에 담고 있다. 이번엔 좀 더 깊다. ‘아무도 죽어 보지 않았다.’ 이 당연한 사실이, 어느 날 문득 새롭게 다가왔다. 누구나 죽음을 말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겪어본 사람은 누구도 없다. 이는 결국, '살아 있는 건 우리들뿐'이라는 의미다.


이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서 매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실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여정이다. 다들 처음 맞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완성된 이도, 답을 아는 이도 없다. 모두가 인생이라는 하얀 눈밭 속에서 길을 찾는 중이다. 내가 헤매고 불안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아니, 어찌 보면 실수하지 않거나 넘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비슷한 처지끼리 낯선 생을 더듬거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더는 남의 완벽함에 위축되지 않게 되었고, 초조함도 덜해졌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동료애와 연민이 느껴졌다. 세상이 갑자기 축소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훌쩍 커버린 것 같기도 했다. 한결 용감해졌다.


덕분에 소란스러움이 서서히 걸러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확신에 찬 목소리나 성공의 비결이라고 내세우는 것들. 그 모든 것은 나처럼 죽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주장은 눈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금세 희미해져 버릴 흔적들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덜 위축되고, 덜 동요한다.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멀리를 향해 그냥 걸어가는 중일뿐이다.


더 이상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몇 발짝 걸어본 내 경험과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내 틀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드러내는 셈이다. 어차피 모두의 초행길.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각자의 설익은 문제 풀이를 굳이 들이밀 필요는 없다.


나는 이제, ‘있음’의 진짜 힘을 알게 되었다. 있는 듯 마는 듯한 '존재'는, 죽음보다 힘이 세다. 완벽하지 않아도, 답을 몰라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떤 멋진 말보다 곁에서 들려오는 작은 기척 하나가 내게는 언제나 더 큰 위로이고 응원이었다. 언어는 보탤수록 어긋나기 쉽지만, 존재는 더할수록 데워진다. 소중한 이들 곁에 나도 그저 있고 싶다.


아무도 죽어보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그렇게 나를 토닥인다. 지금 이 순간을 '겨우'라도 살아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게 해 준다. 서툴고 어정쩡한 삶일지라도, 죽음보다 값지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얼마나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걷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길 위에서, 계속 이어갈 이유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다시 주문을 꺼낸다.
아무도 죽어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