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갈피를 접으며

이별하고, 또 드러내고

by 소라비

이민자의 객기였을까요. 삶, 죽음, 존재, 사랑, 진심, 믿음, 관계, 혈연, 본질, 예술, 환경, 내려놓음, 주인정신, 조언... 평생을 고민해도 답을 찾기 어려운 이 묵직한 주제들을 브런치 연재의 첫 글감으로 삼았던 건, 저에겐 다소 벅찬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삶의 근원적인 질문부터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숙제를 먼저 끝내야 마음껏 놀 수 있는 어린아이처럼, 저 역시 그런 사유들을 첫머리에 풀어내야 가벼워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공통점을 먼저 마주한 후, 제 개인적인 다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한글을 멀리한 채 살았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 2년은 잊고 지냈던 우리말의 감각을 하나씩 다시 깨워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꾸준히 써온 덕분에 글쓰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지만, 브런치만의 형식은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글 발행 직전의 키워드 선택이 매번 저를 망설이게 했습니다. 어떤 단어는 리스트에 없었고, 또 어떤 날은 세 개로는 모자랐습니다. 그 짧은 선택 앞에서 무엇을 썼고, 또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되묻곤 했습니다.


요즘 제 삶의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별하기’. 애정을 쏟았던 것들과 작별할 때마다, 미련이 많은 저는 좀처럼 쿨해지지 못합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연재를 마쳤는데도 계속 돌아보며 손을 대는 습관을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발간하기 버튼을 누르며, 잘 떠나보내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드러내기’입니다. 얼마 전 수술로 손목에 5센티미터 남짓한 상처가 생겼습니다. 무언가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처음엔 아무것에도 닿지 않게 조심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자주 노출시키고 자극을 주어야 민감함이 덜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감추는 게 능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숨기지 않고 자꾸 내보이다 보면 휘발되고 옅어져 마침내 평평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턱대고 시작한 연재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주제의 연결도 고르지 못했고,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시작부터 발간까지의 과정을 한 번 겪어보았으니, 다음엔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빛 갈피>>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면, 다음 연재는 제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 담긴 시선을 펼쳐 보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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