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백한 Oct 01. 2015

2000원짜리 짜장면

'짜장면 2000원'

늦은 퇴근시간 탓에 갈 엄두도 못냈던 짜장면 가게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흔들거리는 버스 창문에 코라도 박을 기세로 창밖을 노려본다. 얼마 전 기운없는 고개를 버스 창문에 대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지나쳐버린 '짜장면 2000원'이라는 현수막에 번쩍했을 때부터 어째 짜장면 생각이 그치질 않았다. 저번에 집으로 퇴근하려던 무거운 걸음을 겨우 돌려세운 보람도 없이 깜깜하게 꺼져있는 짜장면 가게의 비극을 맞닥뜨리곤 괜히 닫힌 문이나 한번 덜컹거렸다가 어쩐지 짜장면 생각만 더 간절해졌다. 오늘은 반드시 먹고 말리라는 다짐으로 버스 한 정거장을 더 가는 수고를 보태 지나가는 차창으로 짜장면 가게의 불이 훤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였으니 그 거삿날은 바로 오늘이 틀림없다.


입안에 착 감기는 기름진 음식을 안 좋아할리 만무하지만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식 잘 먹고도 찾아오는 더부룩한 헛트름에 배만 문질러대야 하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는지라 감히 짜장면을 먹겠다 결심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얼마 전부터 짜장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는 건 아무리 2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집밥 밖에 모르는 내가 바깥 음식을, 그것도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짜장면이 땡긴다며 이렇게 벼르는 건 모르긴 몰라도 예삿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 짜장면 만큼 생각지도 못한 일이 차고 넘친다. 


헤어지자 백만번 연습하고는 막상 그 한 마디가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는, 평소에는 웃으며 넘어가던 일도 왠지 정색하게 돨 때 문득, 잘 만나던 친구의 만나자는 말에 괜스레 다른 약속이 있다며 피하게 된다던지 하는. 뒤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지 싶게 나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두룩 쏟아진다. 내 머리 속 계산과는 상관없이 무심코 나와버리는 이런 짜장면같은 상황이 그랬다면으로 시작하는 가정과 그러지 말걸으로 끝나는 후회로 이어지는 날엔 자책이라는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골치를 썩는다.


몸이 더 잘 알때가 있다.

머리로는 그동안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나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머리로는 이제껏 그리지 않았던 모습의 내가 그저 내가 지금 어떻게 하는지만 이어 붙이다가 완성되어버린 '나'와 맞닥뜨린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머릿 속으로 쉴새없이 '나'를 되새김질하고 오만 신경을 다 쓰다가 결국 체한 것 처럼 탈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먹고 싶던 짜장면 한 번 잘- 먹고 나온 오늘은 생각보다 그렇게 더부룩하진 않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는, 사람이 불현듯 어떤 음식이 땡기면 몸에서 그 음식을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던데, 보약이려니 생각하고 먹은 덕분인지 진짜 보약이 된건지 장하게도 잘 소화해냈다.


실은 짜장면이 먹고 싶어한,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은 미련한 마음이 남은, 그 말이 어지간히 싫었던 예민한, 오늘은 친구 만날 기분이 아니었던 찌질한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본다. 몸에서부터 맞춰진 인간적인 나를 머리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잣대로 거르지 않고 수긍한다면 세상의 어떤 짜장면이든 좀 더 기분좋게 소화해낼 수 있지 않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멀찍하니 키만 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