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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Nov 03. 2017

나랑 결혼할래?

평범한 국제결혼 이야기(5)

또다시 시작된 장거리 연애.


그 사이 나도 한국에서 취직을 하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상을 시작했다. 브라질과 한국의 시차는 12시간. 내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 그는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 내가 퇴근한 후에는 그의 아침을 깨우며 메시지로 그날 하루는 어땠는지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생각해보면 매일 똑같은 인사,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하루쯤은 연락을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총 3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떻게 계속 인연을 이어나갔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연애 아닌 연애를 하는 나를 친구들은 가엾게 여기고 소개팅을 주선해주기도 했지만, 확실한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닌 그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낄 즈음 그가 한국에 왔다. 공식 연차 30일에 주말에 일해가며 모은 휴가 15일까지 총 45일의 일정이었다. 다행히 나도 그 당시 다니던 회사와 근로계약을 갱신하기 전 한 달 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결혼 후 분가한 동생 방 하나가 남아있었기에 무리 없이 우리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 서울, 부산, 경주, 포항, 통영, 거제, 전주, 세종, 제주까지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는 시간 없이 빡빡한 여행 일정을 강행했고 틈틈이 친구들도 만났다. 


이전까지는 부모님도 나의 외국인 남자 친구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냥 친구겠거니, 설마 결혼까지 생각한 사이겠어, 하며 호기심을 보이셨는데, 그런 그가 한국에 온다고 하니 적잖이 걱정을 하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법. 그의 선한 인상과 말은 안 통해도 느껴지는 그의 정감 어린 모습에 마음을 놓으셨을 게다.


그렇게 그와 함께 한 시간도 잠시, 다시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 더 커지고 이렇게 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이제는 기든 아니든 결론을 내야만 할 때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의 결론이 이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브라질로 가야 하나, 한국에서 살아야 하나. 여기든 저기든 무슨 일을 해야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까. 지난 30년을 한국에서 살아왔으니 남은 인생은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브라질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을 때부터 친구들은 내가 브라질로 떠날 것을 아쉬워했었는데 그런 친구들과 가족을 남기고 간다면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겠지.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말이 잘 통하는 곳이어야 출산 고통도 덜하고 산후조리도 덜 힘들 거야. 외국인과의 결혼을 우려하시는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리도록 한국에서 시작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그때 그는 고향집에서도 더 산으로 들어간 마을에 땅을 조금 사두었고, 우리는 돈을 모아 가까운 미래에 그곳에 집을 짓고 작은 민박집을 지어 관광업을 겸한 전원생활을 꿈꾸었다. 사실 그와는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미래에 꾸릴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나누어 왔었다. 그가 “난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를 서너 명 갖고 싶어”라고 얘기하면 난 “누구랑 결혼할 건데?” 라 되물으며 그의 마음을 떠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과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하니 이제 그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브라질로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와 함께 오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이런 현실적이고 골치 아픈 이야기를 메시지로 나누던 어느 날 그가 영상통화를 신청했다. 주말 저녁 잠옷 차림에 즐겨보던 예능과 드라마에 심취해 있는데 그가 자꾸 전화를 하니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말이 있다고 계속 재촉하는 통에 TV를 끄고 핸드폰 카메라로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진지한 모습의 그의 표정과 말투.

 이제 더 이상 너와 떨어져 지낼 수 없어. 나랑 결혼할래?


‘설마. 이렇게 프러포즈를 하는 건가. 난 잠옷 차림에 머리도 부스스하고 전혀 그런 로맨틱한 분위기가 아니잖아.’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이런 상황에 난 어떤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 넌 나랑 결혼하고 싶어?”
“응. 넌?”
“나도”


구체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기 전에 나의 확답을 받았어야 했나 보다. 반지도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받은 청혼. 평생 기억에는 남겠다.


그리고 그는 부모님께 결혼을 승낙해달라는 편지를 쓸 테니 나보고 번역해서 읽어드리라고 했다. 그것보다는 편지를 써서 나한테 보내면 내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낼 테니 그걸 보고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내면 더 좋아하시지 않겠어? 그가 포르투갈어로 써서 보낸 편지는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인데 내 이야기를 내가 번역하려니 쑥스럽기만 했다. 아무튼 한글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보고 따라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박또박 정성 들여 잘 써왔다.


부모님께 그의 편지를 전달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허락한 거야?”
“허락 안 한다고 안 할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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