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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l 26. 2023

방콕에서 처음 겪는 충격과 공포의 벽간소음 3

아직 최후의 수단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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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해결책: 리뷰를 통해 벽간소음 실체를 여행객들에게 알리자


옆집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손님을 받고 있으니 이 건물은 아마 현재 에어비앤비에서 꽤 인기 있는 매물임에 틀림없다. 현명한 여행자들이라면 에어비앤비같이 리스크 높은 숙소를 예약하기 전 분명 구글맵에서 건물 리뷰를 먼저 확인할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다 직접 벽간소음의 문제를 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문으로, 짧지만 그 안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티가 많이 나는, 이런 리뷰를 남겼다.

여기 에어비앤비 예약하지 마세요. 벽간 소음이 해도 너무 심한 건물입니다. 만약 새벽에 옆집에서 기침하는 소리에 매일 밤 잠도 못 자고 여행을 망치고 싶다면 당장 예약하세요.

막상 써놓고 나니 누가 이걸 읽는다고 현실적으로 내 옆방 예약 건수에 영향이나 줄까 싶었다. 이 건물에 방은 수백 개,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리스팅만 수십 개다. 또 내 개인 프로필이 연결되어 있는 구글 계정으로 리뷰를 남긴 것도 마음에 걸렸다. 옆방 여행자 가족의 소음에 고통받던 새벽 시간에 저지른, 꽤나 충동적인 처사였다.


또 한 가지 큰 산이 있었다. 에어비앤비에 올라와있는 방콕 숙소들은 개인이 소소하게 자기 집을 내놓고 관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 업자가 수십 개 방을 관리하며 사업처럼 굴리는 경우도 많다. 중국인 투자자들이 방콕 부동산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실무를 처리하는 태국 현지 매니저를 따로 고용해 단/장기 렌트를 운영하는 일도 흔하다. 내가 최근 쫓기듯 이사 나온 집도 그런 경우였으니, 지금 내 옆집도 그럴 수 있겠다고 짐작을 하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구글맵에 수상한 리뷰가 하나 올라왔다. 중국인 작성자가 남긴 리뷰였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이 건물은 방음도 아주 잘 되고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중략) 방콕에서 머무를 숙소로 추천합니다.


난다.. 구린내가 난다. 여행객이 숙소에 긍정적인 리뷰를 남기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청결, 위치, 뷰도 아닌 건물의 완벽한 방음 시공에 대한 찬사일 리가. 심지어 내가 남긴 리뷰에 있던 추천 수 두 개가 사라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내 리뷰를 묻어버릴 작정으로 비추천을 누르고 이런 리뷰까지 쓴 것 같았다.


합리적 의심이 드는 그녀의 리뷰


물론 이 모든 게 소음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의 망상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이 리뷰를 바로 내 옆집 에어비앤비 집주인이 썼을 확률보다는 같은 건물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수많은 중국인 투자자들 중 하나의 소행일 확률이 높았다. 리뷰 관리까지 해가더 많은 예약을 받아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자들인 거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집주인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내가 작정하고 댓글부대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는 꼴이라는 결론이 났다. 나는 결국 작성했던 리뷰를 삭제했다.


이런 감정적 소모만 심한 쫌쫌따리 짓은 그만두고, 다음 해결책을 찾자.





마지막 해결책: 옆집 여행객들에게 편지를 쓰자


옆집 여행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협조를 부탁하는 정중한 편지를 쓰는 것. 마지막으로 시도한 이 방법은 사실 제일 처음 귀마개를 사던 순간부터 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해서 고민했었다.


대충 초안까지만 작성해 둔 편지의 요지는 아래와 같았다.

그들이 방콕에서 즐거운 여행을 하기를 바라는 나의 진심을 전하고

이 건물의 허접한 방음 상태를 설명하는 동시에

나는 방콕에 삶이 있는 평범한 9-6 직장인이라 새벽잠을 꼭 사수해야 한다는 눈물 나는 사연을 알리며

부디 밤늦은 시간만에라도 소음을 줄여줄 수 있는지 정중히 부탁하기



여러 언어로 번역한 이 편지를 옆집 방문에다가 간식과 함께 붙여두는 것-까지가 내가 생각해 본 플랜이었다. 간식을 같이 두고 싶었던 이유는  몇 마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순수한 의도와 무해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새벽에 한 손에 요가링을 쥐고 씩씩대며 벽을 부수는 상상을 하는 미친 이웃의 형상 대신 말이다.


하지만 이걸 실행에 옮길지 말지가 계속해서 망설여졌다. 편지를 받아 든 여행객들의 반응도 예측이 불가능했거니와 (선을 넘는 것인가?), 책임은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또 결정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여행객들과 나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지점이 생기는 것이 도통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최후의 상황에서나 쓸 방법으로 보류해 두자는 마음으로 다른 방법들을 먼저 시도해 보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소음에 병들어가면서도 고집을 피우던 내가 마음을 한순간에 바꿔먹게 한 계기는 생각보다 빨리, 그것도 새벽 3시에, 귀신처럼 나를 찾아왔다.


다음 편 (마지막)에서 계속..



@sorang.diaries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방콕생활 소식을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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