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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Oct 15. 2023

남의 아파트 단지에 밥 먹으러 갑니다

쿠알라룸푸르 현지인들이 찾는 야시장


동남아 여행을 한 두 번 다녀보면 금방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야시장은 열에 아홉은 실망스럽는 것. 그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니 현지 물가보다 비싼데, 그에 비해 맛과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현지식도 아닌 듯한 정체불명 음식들 천지에 끊임없는 호객행위까지 더해지면, 여행 전부터 고대하던 야시장 탐방 실망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럼 동남아 여행에서 복작복작한 야시장의 낭만을 포기하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 없다. 유명한 야시장에 가서 실망했다면, 이제 현지인들이 가는 야시장은 어딘지 알아낼 차례다. 이 글에서 소개할 쿠알라룸푸르의 낯선 동네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열리는 야시장처럼 말이다.


파사르 말람 센툴 (Pasar Malam Sentul, 센툴 야시장)은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저녁 5시에서 9시까지만 열린다. 주 고객층은 금요일 밤을 요리하고 설거지하며 보내고 싶지 않은 현지인들. 규모는 약 30개 점포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고, 구입한 음식을 앉아서 먹을 공간도 없는 오로지 포장을 위한 야시장이다. 때문에 동네에서 밥을 사러 걸어 나오는 주민들과, 차를 바로 옆 아파트 주차장에 대놓고 먹을거리를 포장해서 다시 차에 올라타는 외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요일 저녁 일곱시 센툴 야시장의 모습


센툴 야시장이 위치한 동네는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북쪽으로 불과 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시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화려한 고층 빌딩들로 가득한 차가운 KLCC 시내에서 마침내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동네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올라간다. 설사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마주친다 해도 '이게 진짜 현지인들이 먹는 거라니 뭐.' 하며 대충 눈감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소한 관광객이라서 눈탱이 맞은 억울함은 없으니 말이다.


센툴 야시장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가게도 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는 상인분들도 있다. 일단 가벼운 미소를 장착하고, 간단한 말레이어 몇 마디만 정도만 익혀서 가면 더 알찬 '찐 현지인' 야시장 경험을 할 수 있다.


금요일 저녁, 가족 단위로 나와서 음식을 사고 있는 쿠알라룸푸르 시민들


센툴 야시장의 분위기와 그곳에서 찾은 로컬 음식들을 아래 사진과 함께 공유한다. 쿠알라룸푸르의 현지인 '픽' 야시장이 궁금한 여행자들을 위해.




쿠이 (Kuih) 가게. 쿠이는 쌀 또는 찹쌀가루 반죽에 코코넛, 콩고물, 판단잎 등 여러 재료를 더해서 다양한 색과 맛을 내는 말레이시아의 한입거리 전통 디저트다.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쿠이들 모음.  사진 출처: MalayMail
가격은 원하는대로 골라 다섯개 들이 한 상자에 4링깃 (약 1,100원).
"텍마머니"
동남아에서는 초록색 디저트는 말차맛일 경우보다 판단맛인 경우가 많다. 판단 러버는 초록색이 보이면 그냥 산다.
코코넛, 캐러멜, 판단, 땅콩, 커피, 녹두, 타로 등 오만가지 재료를 더해 다양한 맛과 식감을 낸다. 쫄깃하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하고 짭쪼롬하다. 고르는 재미가 있다.
푸투 밤부 (Putu Bambu)는 대나무 안에 넣고 찐 쌀가루 반죽 위에 코코넛과 설탕을 올려 먹는 간식. 맵쌀떡 식감일 줄 기대했으나 의외로 너무 버석버석했다.
가격은 한 상자에 3링깃 (약 900원)
국민간식 아팜 발릭 (Apam balik). 반으로 접은 두툼하고 고소한 팬케이크 반죽 안에 땅콩과 옥수수가 들어있다. 이건 무조건 먹는 거다. 하나에 6링깃 (약 1,700원)
퐁신하고 꼬소하다. 뜨끈할 때 먹어야 더 맛있다. 하지만 양이 상당해서 배가 금방 부른 것이 단점.
야시장을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것 마다 야금야금 사모았더니 이 사달이 났다.
야시장 가장 뒷편에는 과일을 파는 점포들이 모여있다.
사실 두리안을 제일 기대했으나, 무게를 달아 파는게 아니라 흥정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대용량 아보카도 스무디. 연유 조금만 넣어달라고 하니 흔쾌히 그렇게 해주셨다.
이것은 국적을 알 수 없으나 불량식품 스러운 맛이 입에 쫙쫙 붙어 만족스러웠던 닭튀김.
이렇게 솔솔 시즈닝 가루를 뿌린 다음 치즈소스가지 촤르르 뿌려주셨다. 이 날 먹은 것 중 가장 비쌌다. 둘이서 나눠먹어도 충분한 양인 한 상자에 13링깃 (약 3,700원)
이 집에서 구입한 구운 닭다리 밥 (이 사진에는 못담음)이 오늘의 1등이었다. 한 상자에 5링깃 (약 1,400원)
동남아 시장 국룰: 쌓아놓고 파는 국수는 먹는거 아님. 차고, 짜고, 불어터진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격은 한 상자에 5링깃 (약 1,400원)
무르타박 (Murtabak). 얇게 편 밀가루 반죽 안에 커리를 넣은 다음 접어서 굽는다. 생각보다 맛이나 향이 강하지 않고 입맛에 잘 맞았다. 가격은 5링깃 (약 1,400원)
살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손에 든게 너무 많아 포기한 닭날개.
어쩌다보니 느무 많이 산거예요...
구운 닭다리밥 1등. 무르타박 2등. 버터구이 옥수수 3등. 누들은 대대대실패.
참새가 방앗간 못지나치듯, 시장 과자는 언제나 참기 힘들다. 다 한입씩 먹을 수 있는 모듬 봉투가 있다면 좋겠다.




센툴 야시장 (Pasar Malam Sentul)


운영시간: 금요일 오후 5시 - 9시

위치:


센툴 야시장 외에도 특정 요일에만 열리는 야시장들이 쿠알라룸푸르 곳곳에 있다. 월, 수, 토요일 오후 4시 - 10시에 열리는 판타이 달람 야시장, 목요일 오후 4시 - 11시 반에 열리는 잘란 후잔 에마스 야시장 등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야시장을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정리해 두었다.


더 많은 방콕 사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orang.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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