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껍데기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서른이 되면 저층부와 고층부 엘리베이터가 나누어져 있는 커다란 대리석 건물로 출퇴근하면서 다달이 대출 갚을 돈 정도는 걱정 없을 정도로 벌어먹고 살 줄 알았다. 발 닿는 땅바닥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다 느껴지는 납작한 스니커즈 대신 신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지는 힐을 신느라 매일 발이 아플 줄 알았다. 커리어우먼, 그러다가 부지런한 워킹맘, 그러면서도 남편과 사이도 좋은 “어른”. 그리고 아등바등 살았던 시절의 결핍, 그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그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람 좋게 웃으며 청춘 드라마의 성장일기처럼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시절이 생기는 때가 서른 즈음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상상해 왔던 어른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재밌는 건 이게 비단 나만의 상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느 서점에 가서 “어른”이나 “서른”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의 인사말을 훑어보면 다들 마치 뒤에서 짠 것마냥, 근사한 어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들 또 한 번 짠 것처럼, 상상해 왔던 어른의 모습과 현실의 자신을 대비하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꾹꾹 눌러 담아 녹진한 글들로 전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로 나는 서른세 살이 되었다. 누구는 “여전히 좋을 때”라며 뭐가 됐든 일단 도전해 보라고 대책 없는 응원을 해주기도 하고 어떤 누구는 “꺾였네”라며 마치 내가 성공을 마구 뽐낼 수 있는 데드라인 나이를 넘어선 것처럼 나를 남몰래 안쓰럽게 보기도 한다. 여전히 좋은 나이일지, 한풀 꺾인 나이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삼분의 일 지점에 와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사실이 때로는 나를 안도하게, 때로는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 험난한 인생을 이만큼이나 별 탈 없이 지나왔다니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제까지 별것 하나 세상에 내보이지 못한 것 같아 참 한심하기도 하다. 어느 감정 하나에 치우치지 못하고 그저 처치곤란인 지금의 이 상태, 지금의 이 마음을 내 또래인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멋대로 상상하고 생각해 왔던 어른의 모습과 현실에서 어느 부분 하나 녹록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음껏 비교질 해보려고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교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냐고? 글쎄, 잘은 몰라도 적어도 지금처럼 왜 이렇게 갈팡질팡하는지 단서 하나쯤은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어른”이라는 육중한 껍데기를 짊어지고 있다가 누군가의 아주 소박한 말 한마디에, 작은 행동 하나에 툭 하고 부서져버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