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 뭐길래

이제부터라도 되어보고 싶은 진짜 어른

by 건빵진소라

돌이켜보면 내가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은 다 껍데기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에서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단정한 구두를 신고 손에 서류 파일 같은 것들을 들고 있겠지. 집에서는 깔끔하게 다려진 라운지 웨어를 입고 시원하게 난 창으로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쯤 걸치겠지. 아이가 있다면 주름 하나 없는 말간 얼굴로 아이의 간식을 정성스럽게 차려주곤 하겠지. 어이쿠, 이쯤 되니 이런 상상으로 30년을 살아온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끔찍하다! 내 머릿속에서 어른에 대한 이미지 파일들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어떠한 선택에 따르는 책임감과 관련된 상상 따위는 쥐뿔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제는 그럴듯한 껍데기를 걸친 사람들을 어른이랍시고 동경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껍데기가 부와 권력 혹은 명예와 같이 흔히 말하는 성공의 전리품들로 덕지덕지 무장되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위화감을 극도로 경계하면서도 성공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껍데기에 은근하게 집착해 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성공을 운운하며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사람들을 속으로 마구 씹어댔으면서 이제 와서 어느 순간 보란 듯이 성공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에 속이 여간 쓰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안다. 성공한 사람과 어른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오만한 건지 모르겠지만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도 대충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어른은 삶에 대해 자신만의 올곧은 마음가짐을 가지고서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뒤따르는 책임을 묵묵히 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사실 고백하자면 내가 묘사한 좋은 어른은 서른세 살의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반대로 뒤틀었 때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나는 어른이 아니다. 내 삶에 대한 나만의 신념이나 생각, 관도 마땅히 없거니와 그로 인해 그 어떤 확신도 가지지 못하고 선택을 내려버리는 사람이다. 최악은 그 선택에 딸려 떠밀려오는 수많은 결과의 잔해들을 어느 하나 제대로 마주하지도, 책임지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서른셋이나 먹었으면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세상의 모든 서른세 살들을 붙잡아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뭐든 아주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인간. 이 인간을 앞으로 남은 레이스동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물론 서른셋 먹도록 이렇게 욕먹을 짓만 한 건 아니다. 좋은 어른들을 만났고 그들이 진짜 어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가깝게는 남편, 가족,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동네가게 사장님, 필라테스 선생님, 회사의 클라이언트, 그리고 우연히 만난 택시기사님까지!- 속에서도 진짜 어른들은 반짝반짝 내 눈에 잘 띄었다. 자라나는 방울토마토 옆에 곧게 자라나라고 막대기를 대어주는 것처럼 나는 그들을 옆에 두고 때로는 삐죽거리면서도 곧게 자라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곁에 둔 진짜 어른들에게 살짝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폭 안겨버려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내가 아닌 그들이 해내고 있는 거면 어쩌지, 이러다가 그들이 나를 떠나버리면 어쩌지, 그들 없이도 내가 온전히 발밑에 힘주고 나로 설 수 있는 걸까. 힘만 빠지는 걱정을 왜 이리 많이 하냐고 누군가는 타박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내가 삶이 나아가는 매 순간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는 솔직한 고민이다.

결국 나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라는 사람 안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괜찮게 살아내려 애쓰는 수많은 나를 보며 그저 안쓰러워서. 누가 보면 웃기다고 할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이토록 안쓰러워하다니. 세상 사람들과의 비교질에서 시작된 자기 연민, 이 늪에 빠진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하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 안의 나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 하지만 제대로 나아가지 못해 스스로를 책망하는 나, 그딴 건 다 잊고 그저 피하고 싶은 나, 그러다가 또 나아가지 못해 후회하는 나. 이 모든 나들이 서로 할퀴고 도망 다니고 충돌해 버리니 진짜 어른이 되기 전 지금의 나는 발가벗겨보면 남들이 보기에 광란의 서커스 공연 같을 것이다. 그치만 나만 이렇지는 않을 테지. 떠들썩한 세간의 뉴스만큼이나 시끌벅적한 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우리의 속을 알아차려줄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 어쩌겠나.

이전 01화프롤로그ㅣ제가 생각한 어른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