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함으로 나아가는 과정
지금까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 성숙함으로 나아간다고 느꼈던 순간, 나름대로 배우고 느꼈던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어쩌면 내 글을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렇게 성숙함에 집착하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에 와서야 그 이유를 쓰고 싶어서 아끼고 아끼다가 이제야 털어놓는다.
내 안의 미성숙함은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다. 심지어 내 안의 다른 자아에게 채찍질을 해대기도 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미성숙함이 종종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얼른 성숙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래야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내 사전에 360도 어른은 없다. 모든 방면에서 다 성숙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숙함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의 개념이라고 믿는다. 꾸준히 돌보고 끊임없이 돌아봐야 그나마 갖출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제의 성숙함이 오늘은 미성숙함으로 변모해있기도 하고 오늘의 미성숙함이 내일은 성숙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것이 내게 위로가 될 때도 있다. 항상 미성숙한 사람으로 머물지는 않겠구나,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하는 위로.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방황하는 나를 최대한 위로해보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턴가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게다가 성숙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인 만큼 많은 생각을 눌러 담되 읽는 이에게 쉽게 읽히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괜찮은지는 선뜻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 점에 대해서는 프롤로그에서 말했어야 하는데 하필 지금 생각나서 여기 에필로그에 적다니. 이미 다 읽은 후라면 사후 유감을 표하며 송구스러움을 전한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성숙함에 대해 더 자주 곱씹는 사람들이 더더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돌보고 더 돌아보면 좋겠다. 성숙함은 그렇게 갈고닦으며 나아가는 걸 테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더라’가 아니다.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도 아니다. 아직 무엇하나 확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 스스로를 그저 자라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에 멈춰있는 아이로만 바라보고 있던 내 시야가 조금은 트였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그 정도쯤은. 끝으로 이 글을 읽은 사람들도 글을 읽고서 스스로에 대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단 한 가지라도 알아차린 바가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밝히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