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중요한 나만의 균형잡기
나도 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듯 보인다. 헬스장 거울에 비친 쫄쫄이 운동복 셀카, 러닝 앱에 피어난 족적을 보여주는 인증 사진, 요리 실력을 은근히 담아낸 따끈한 음식 사진,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한 직장동료들과의 네 컷 사진, 주말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감성 차박 사진 등등. 슥슥 내가 엄지를 밀면 바로 지나갈 수 있는 사진에 불과한데 그 짧은 틈에도 저마다씩 꼭 말을 건넨다. ‘나봐,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라구!‘
이러한 모습의 사람들을 비판하려고 쓴 글 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거울 속 나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내 세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증명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며 성장하는 사람, 제법 근사한 취미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 성격도 좋은지 주변 친구가 많은 사람, 돈도 시간도 꽤 여유가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라는 마음이 저마다 있는 듯하다. 우리가 소셜 플랫폼에 곧잘 올리는 사진들의 모습이 사람마다 다 다른 형상을 하고 있고 동시에 특정인이 올리는 사진들에 일관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사진첩 속 수많은 사진 중 그 사진들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돌아보면 나는 많은 경우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 것 같다. 내가 가장 자주 올리는 사진은 남편과 함께 마시고 있던 영롱한 빛의 위스키, 그것이 잔을 뚫고 뿜어내는 캐러멜색 몽글몽글한 구름을 담아낸 사진이었다. 혹은 남편과 함께 잘 꾸며놓은 위스키방에서 얇은 바늘에 긁히며 닳으며 구수한 노랫가락을 들려주는 턴테이블을 올리기도 한다. 남편과 행복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나는 내가 지금 즐기고 있는 이것이 낭만이라고 뽐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슷한 사진을 그렇게 많이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니.
남들에게 어떠한 모습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 그것을 애써 부정하거나 딱히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그 욕구로 인해 자기 증명에 뛰어들면서 생겨난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상정해 놓고 그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무언가를 해내고 드러내는 우리는 그 행동의 동인이 된 욕구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만다. 때로는 애초에 그러한 욕구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별생각 없이 자기 증명의 관성에 이끌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곤 결국 지치는 순간이 오게 된다. SNS를 하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하지, 왜 이렇게 소모적인 것 같지, 왜 이렇게 비교하게 되지, 하고. 어쩌면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 증명의 형태가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그제야 만족감이 드는 자기 증명으로 우리의 마음 한편이 공허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기 증명의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치나 특정 강점을 발현시키고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은연중에 얻는다. 그것을 나는 자기 효능감이라 부르기도 하며 우리의 삶에 대단히 필요한 감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감각에 자주 취해버리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을 가지곤 한다. 나 스스로 진정 기특하다고 여기는 것에 충분히 흡족해하지 않고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 혹은 내가 설정해 둔 이상적인 자아에 부합하기 때문에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다가 나를 진짜 성숙하게 만들어줄 감각들을 눈앞에서 놓쳐버릴까 봐 자꾸 조바심이 난다.
자기 증명. 민낯 그대로의 나를 증명해 보이는 행위. 한편으로는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꾸준히 내보이며 증명해 나가는 행위. 때로는 이러한 자기 증명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기 증명이 곧 목적이 되어버리는 삶은 어쩐지 조금 슬플 것 같다. 나를 스스로에게든 남들에게든 어쨌든 누구에게 계속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어쩌면 나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삶이었을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묵직한 주춧돌 하나 없고 이리저리 잘 휩쓸려 다니니 어떻게든 다른 부분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해 보였어야 했던 것 같다. 내게 부여된 다양한 사회적 역할에 그토록 충실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지금부터의 삶에서는 자기 증명보다는 균형 잡기에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내 뜻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플랜은 거창하지 않다. 작은 자아들로 가득 차서 풍선처럼 빵빵해진 나를 중심에 두고서 공중에 둥둥 띄운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를 띄우기 위해 수많은 실들이 내 기준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는 모습, 그리고 그 실들이 나를 지탱해 주는 딱 그 모습이 되어보려 한다. 마음속에 태풍이 일어 나를 지탱해주는 실이 몇 개 끊어져도, 장마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려 풍선 같은 내가 축 쳐져도, 이러나저러나 제자리에 둥실둥실 떠있는 모습. 충분히 흔들리며 중심을 잡아가며 그렇게 용케 떠 있는 모습. 벌써 웃음이 난다, 이런 모습도 언젠가 증명해 보이려고 용쓰는 날이 오려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