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의 인생 수업
영어 관광통역안내사 5년 차, 아직 쪼렙 영어가이드이지만 그래도 꽤 많은 외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그렇게 투어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대부분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삶의 태도,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진심에서 비롯된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세 팀의 손님을 통해 내가 가이드로서 배운 감정, 가치, 그리고 인생의 힌트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다정한 노부부들 – 손을 잡고 걷는 사랑의 방식
유럽이나 호주에서 온 노부부들은 정말이지 다정하다. 한국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모습인데, 투어 내내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서로를 챙기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한다. 필립 아저씨는 나와 함께 제주에서 원데이 투어를 했던 분인데, 제주에 다시 오신다며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드라마와 BTS를 좋아하는 아내분을 위해 다시 제주에 오셨다. 첫째 날엔 와이프가 좋아하는 드라마 촬영지에서 사진을 찍고, 둘째 날엔 함께 방탄카페에 갔다. 서쪽에 갔다가 운 좋게 돌고래를 보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필립 아저씨는 지금 이 여행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하셨다. 너희들은 일이겠지만 우리는 너무 행복하다며, 잡초가 무성한 정원에서 즐겁게 웃던 기억이 아직도 아련한 행복함으로 기억된다. 사실 제주를 소개한 건 나지만, 그분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내게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필립 아저씨는 주말에 오셔서 남편이 운전을 해주었는데 우리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여운을 남겨주셨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그 모습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여행으로 치유받는 사람들 – 눈물과 웃음 사이의 시간
남편을 잃고 홀로 한국에 온 젊은 호주 여성. 첫 자기소개에서부터 눈물을 보였고, 투어 내내도 종종 감정이 북받쳐 오르곤 했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뒤, 영어로 된 어떤 것도 듣거나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남편을 떠올리게 해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치유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창열 미술관에 갔던 날, 그녀는 물방울 그림을 보고 엉엉 울었다.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었다. 미술관에 들어가는 길에 있는 로즈메리가 있었는데, 남편의 장례식에서 로즈메리를 뿌렸다고 한다. 그리고 물방울이 주는 그 고요함과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그녀 마음속 깊은 어딘가를 건드렸던 것 같다. 펑펑 울고 나서 그녀는 오히려 더 괜찮아졌다.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내가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이 직업은 때때로, 누군가의 치유를 함께 목격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혼자 여행하는 멋진 할머니 – 내가 되고 싶은 미래
가끔씩 만나는 혼자 여행하는 멋진 할머니들. 그분들은 단순히 '용감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유쾌하고, 예의 바르고, 자기 생각이 분명하며,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제주 해녀의 공동체 정신과 회복력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공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곳곳에는 멋진 여성들이 많고, 그들과의 짧은 인연들이 내 미래를 자극한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멋진 할머니가 돼야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이다.
나는 그들에게 제주를 소개했지만, 그들은 내게 인생을 알려주었다. 어떤 날은 내 말이 위로가 되었고, 또 어떤 날은 그들의 눈빛 하나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단순히 장소를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여행에 진심으로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다.
관광통역안내사는 정보를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때로는 ‘작은 기적’에 가까운 일 같다. 그리고 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여행자에게만큼이나 나에게도 의미 있는 하루를 준비한다. 이번 주 투어도 잘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