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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Mar 25. 2024

예술은 본디 내 것이 아니니



어떻게 고흐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을 그토록 생생한 푸른색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밤의 카페테라스"의 푸르른 밤하늘에 나는 한동안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음악에 흠뻑 취한 채 유럽의 한 클럽에서 나와 선선한 밤의 거리로 들어선 순간,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내가 흠모했던 고흐의 그 푸르른 밤하늘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와... 바로 저 색이었어! 바로 저 색이었어!"라고 외쳤다.


고흐는 자신의 감각에 따라 빛깔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 펼쳐진 완벽한 밤하늘의 색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밤은 낮보다 색이 더 풍부하다."던 그의 말은 은유가 아닌 사실이었다.







예술은, 벽에 걸리든 카메라에 담기든 글로 올리든 선율로 저장되든, 그것이 오피셜 하게 연결되는 순간 더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일종의 공유 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OTT를 통해 예술의 공유가 더욱 활발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작품을 개인 기기를 통해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관심을 끄는 책이 있어 펼쳐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처음 보는 책에서 아끼던 나의 문장을 발견했다. 문제는 그 문장이 이미 타인의 이름으로 발행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상해 그만 책을 덮고 서가에 그대로 꽂았다. 내 글을 더는 내 글이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마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겪은 이러한 현상을 한번 '심상(心象)의 공유'라고 해보자. 수많은 매체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가운데 동시에 주입된다. 이렇게 되면, 모두는 아니다 하더라도 비슷한 경험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 비슷한 심상이 떠오르게 되고, 나오는 결과물들도 매우 유사할 수 있다.


비슷한 현상을 예로 들어보면. 신조어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하였을 테지만 그것을 따라 사용하는 대중이 많아지면서 누구의 말이라고 라벨을 붙일 수 없는 일상의 언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언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의 생각이 언어와 함께 공유된다. 여기서 특정한 것에 관한 인식의 공유도 일어나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공유의 시대를 완전히 다른 결로 열어놓음에 따라, 예술 세계의 판도가 다시 한번 바뀌고 있다.


누가 원물을 창작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공유물(오픈 소스)을 가지고 어떤 편집물을 내었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우수한 감각을 가진 각계의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니, 원작자의 개념이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합성된 결과물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창작이란 오래전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도서를 집필한 한 지혜자의 말마따라 해 아래 '처음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권리를 포기하고 쌓아놓은 것을 기반으로 하여 창작활동을 펼친다.


서로의 재능을 지지하고 격려했던 C.S. 루이스와 J. R. R. 톨킨의 책들에서, 서로의 문체와 세계관과 캐릭터가 섞여있는 들 누가 비난할 것인가?


고흐도 창조주의 색감을 그대로 캔버스에 재현해 놓았는데, 과연 그를 표절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허무하게도, 어쩌면 모든 것들은 그저 재료일 뿐이다.


고흐는 밤하늘의 푸른빛과 영롱이는 별빛, 테라스 덮개의 안감을 비춘 쨍한 조명의 빛을 재료로 하여 자신의 눈과 손과 감각으로 경이로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내가 고흐와 같은 그 푸르른 밤하늘 아래 서 있었다 한들, 그처럼 그림을 그리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의 심상과 재능에 완전히 가 닿지는 못할 것이다.



비슷하더라도 제대로 분간할 수 있는 각 사람의 예술혼이 지문처럼 존재함을 나는 믿는다.




그래, 그렇다면 나의 예술혼은 무엇일까?

숙명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왜 예술을 하려는 것일까?


재현하기 위하여 예술을 시작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귀했던 것들을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것으로 풀어내기 위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곡을 썼다.


내가 전하는 그것 또한 내 것이 아니듯,

평범하고 낡은 나의 삶도 오롯이 내 것일 수 없듯,


그 모든 것으로 빚어질 예술은

본디 내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이 시대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 세대의 어느 한 거리에서

이 세대 누군가의 심상에서

나의 글과 그림이 일부라도 녹아있다면


그래서 그 가장 귀한 가치가

그들의 하늘에서

푸르른 하늘빛과 별빛으로 빛나고 있다면


나는 늘 그랬듯이 담대하게

나의 온 삶을 재료로 삼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도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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