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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망스 Oct 01. 2024

면접 보다가 엉엉 울다니

어디가서 말하기 창피했던 사회초년생의 취업 면접 흑역사

약 7개월을 계약직으로 근무했을 즈음, 내가 다니는 회사에 공채 티오가 났고 아무렴 계약직보다야 정규직이 백배천배는 나았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입사 원서를 제출했다. 회사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직원이 정규직 공채로 지원하면 2단계 필기전형에서 일정 가산점을 주긴 했지만 그 외 전형에서는 딱히 큰 메리트가 없었고 동료 계약직 직원들은 생각보다 많이 정규직 채용 시험에서 떨어지곤 했다. 그렇지만 계약직이라는 신분으로서 느꼈던 불안정함 그리고 낮은 처우가 너무나 싫었던 나는 열심히 하면 충분히 합격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정규직 입사 지원을 했다.


다니던 회사였기에 사업 내용을 잘 알았고, 글도 못 쓰지 않는 편이었으므로 1단계 자기소개서 전형은 무리 없이 통과했다.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입사 과정의 복병인 2단계 필기시험(NCS)도 합격했다. 같이 공채에 도전했던 계약직 직원들은 아니나 다를까 모두 필기시험에서 떨어졌었다. 그리고 어디 가서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나의 흑역사는 '역량 면접'과 '인성 면접'에서 발생했다.


말 그래도 역량면접은 지원자가 입사 후 지원한 직무의 일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역량을 테스트하는 면접이고, 인성면접은 성격 혹은 태도 등을 알아보기 위한 면접이다. 먼저, 역량면접에서 나는 '해외 전시회 부스를 구축하는 용역사가 전시회 전날까지도 완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결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경험은 있었지만 단순 업무를 맡았었고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나는 내가 생각해도 요상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입가경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방금 한 말 영어로 해보세요."


한국말로도 더듬거리며 겨우 짜내서 대답한 걸 영어로 해보란다. 순간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Could you please proceed.. with.. the.. booth... construction.. as quickly.. as.. possible..?"

(부스 구축을.. 가능한 한.. 빨리..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절 단위로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며 겨우 한 문장 짜내서 대답했다. 아. 맞은편에 인사팀 대리님이 보고 있는데.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영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역량면접은 말아먹은 것 같아 보였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역량면접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곧바로 인성면접을 보기 위해 위층의 면접장으로 이동했다. 보통 인성면접은 고위급 면접관으로 이루어진다. 당시에도 본부장급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되었었는데, 외부 인사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딱 봐도 연륜이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본부장님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서 뵌 적은 있었지만 나 같은 말단이 일할 때 뵐 일은 전혀 없는 분이었다.


인성면접은 지원자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므로 면접 자체의 난이도는 높지 않다. '상사와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본인은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회사 비전을 말해보세요.' 등 비교적 쉬운 질문들로 구성된다. 내가 면접 볼 때에도, 면접관의 의도를 간파해서 아주 조리 있게 대답은 못 했을지언정 아주 망한 느낌은 아니었다. 근데, 아주 망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세요."


"진실된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훌쩍"


님아 제발 그 입을 열지 마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쪽팔리고 오글거리는 순간이다. 네가 장그래라도 되냐고. 도대체 왜 드라마 대사처럼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는 건데..


미래의 나를 한 달 내내 이불킥하게 만들었던 대사를 내뱉고나서,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쳤다. 당시 계약직으로 있으며 겪었던 힘든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고, 아직 사회 초년생이라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어필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짜 열심히 하겠다 그러니 믿고 뽑아달라'라는 것뿐이었기에 저 대사를 읊었던 것 같다. 뭐 쪽팔리긴 하지만 당시 마음이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그 심정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사회 초년생의 감정적인 읍소는 당연히 통하지 않았고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가 못했기에 결과를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업무 시간에 불합격 통보를 받는 건 좀 잔인했다. 마침 또 매우 바쁜 날이었는데, 날 떨어뜨린 회사에 계속 몸담으며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슬프고 힘들었다.


일도 힘들고, 불합격 통보를 받아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채로 퇴근길 버스를 탔다. 내가 합격 발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말이 없는걸 보고 떨어졌다는 걸 눈치를 챘는지 아빠에게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기대한 만큼 많이 속상하지. 그치만 너무 상심하지 마. 결과가 어찌 됐든 소리는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인 건 변함이 없어.' 나 취업도 제대로 못한 못난 딸인데. 아빠는 내게 괜찮다고 했다. 그치만 나, 정규직 돼서 정말로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는데. 또, 글렀네. 또..


아..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너무 힘들다. 난 언제까지 이렇게 못난 딸이어야 할까.


목 끝까지 차오르는 여러 감정을 꾹꾹 누르며 눈을 감고, 현실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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