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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Feb 18. 2024

새해에는 클럽 죽순이가 될 거야

97년생 MZ esfj 신입 비혼주의자 베지테리언의 일기 5

2월이 끝나기 전, 찬 바람이 부는 겨울까지는 새해라고 생각하며 야심 차게 새해 목표를 밝혀본다.

나는 2024년 클럽 죽순이가 될 테다.


헬스.클럽.



이제 헬스 5개월 차, 시작은 평범한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방향이 같은 직장 동료분과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금 계획에 관해 물었다.

“클럽 가요.”

그럴 수 있지 싶어서 살짝 커지려던 눈이

“헬스클럽.”

헬스클럽이란 말에 눈썹이 한껏 위로 올라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분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정인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날마다 퇴근하고 헬스클럽을 가는, 가끔 일정을 물으면 “오늘 밤엔 클럽가요, 헬스클럽.”이란 농담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때 그분의 생기 가득한 표정에 놀라 진지하게 헬스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지치는 출퇴근을 반복하면서도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가지? 날마다 갈 만큼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점점 주변에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때라 운동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헬스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고 나니 헬스클럽을 행복하게 말하는 그 눈빛과 태도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멋있는 건 멋있다고 동경하면 그만인데, 꼭 멋진 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욕심의 끝은 늘 흐지부지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욕심이 몸을 움직일 때를 기회 삼아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헬스 3개월권을 끊고 출석 5번을 넘기지 못한 이력이… 많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다른 의지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몇 주는 당연히 근육통이 심했다. 헬스를 포기했던 지난날처럼 오늘 이 잠깐의 고통에 무너지고 싶었지만, 달라지고 싶은 의지가 약 1% 정도 더 커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옮겨서 헬스장에 갔다.


달라진 마음으로 한 주에 5일이라는 시간을, 한 달 반을 꾸준히 보냈을 때쯤 몸이 전보다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물론 운동 능력이 좋아진 덕분도 있겠지만, 몸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진 덕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헬스장에 갈 때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면서도 목표나 동기는 막연했다.

‘운동은 힘들지만 건강해져야지, 살 빼야지, 헬스 해야지.’

그런데 이번에는 ‘운동하는 즐거움을 느낄 때까지 버텨보자, 멋진 삶을 살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들은 헬스를 습관으로 만들어 즐겁게 하니까. 건강과 멋짐의 첫걸음을 일단 천천히 시작해 보자.’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당장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될 마음도 없기 때문에 내 속도에 맞게 움직이는 정도로 만족하며 헬스장에 꾸준히 출석했다. 따라주지 않는 몸을 고통스러워하며 넋 나간 표정을 짓는 대신 가끔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음악을 잠깐 멈추고 기구 운동을 하며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운동을 고통스러운 마음의 짐이 아니라 천천히 여유롭게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을 때쯤 러닝머신 위를 걷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던 날, 우연히 듣게 된 관장님의 대화로 헬스에 입문하게 도와준 그분의 표정이 그렇게나 밝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 김 관장. 잘 지내시나.”

“어디긴, 나야 클럽이지.”

다른 헬스장 관장님과 대화로 추정되는 이야기 속에서, 동료가 건넸던 말처럼 헬스클럽은 클럽이 되었다.


순간 헬스클럽에서 헬스의 생략이 낯설고 어색해서 스무 살 초반에 다니던 클럽의 풍경을 떠올려 봤다.


세상 텐션 다 끌어올리는 노래가 멈추지 않는,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열정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


회사 동료가 말하던 클럽. 관장님의 클럽.

헬스인에게 클럽은 헬스클럽이구나.

날마다 클럽에 온다고 생각하니까 클럽이 너무 즐겁고 멋져 보였다.

음악을 듣고 땀을 흘리고 건강까지 얻는 클럽, 이토록 자극적인 곳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클럽을 알아가는 썸을 타다가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올해는 새해 목표를 세우고 잊지 않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에는 이루고 싶고 설레는 목표를 모아 놓은 비전 빙고를 그렸다. 어떤 줄과도 맞닿은 빙고의 가운데 칸에는 헬미녀 되기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헬스에 미친 여자”

‘~~ 녀’, 평소의 나라면 적지 않을 줄임말이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에게 새해 목표를 헬미녀 되기라고 소개하는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포부가 당차고 확실한 데 비해 꾸준히 헬스클럽에 출석하는 것 말고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지금은 그저 헬스장을 재밌게 가서 즐기고 오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단기간에 멋짐만을 얻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꾸준하게 건강을 챙기고, 지금 느낀 재미를 계속 느끼고 싶기 때문에 무리해서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든가, 체지방을 꼭 몇 킬로 빼겠다든가 하는 또 다른 욕심은 자연스럽게 갖고 싶어질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이다.


2024년은 금요일 저녁에 누가 뭐 하냐고 물으면 웃으며 말할 것이다.

“클럽 가요!”

“헬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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