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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Nov 03. 2023

지금은 비혼주의입니다만

97년생 MZ esfj 신입 비혼주의자 베지테리언의 일기 3

지난 주말, 나는 비혼을 선언했던 친구 U의 신혼집 집들이에 다녀왔다. 신혼이라는 말을 쓰는 것부터 100번 망설여졌지만, U와 U의 짝꿍은 법적으로 혼인신고가 된 사이며, 공동명의로 집을 구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다만, U는 여전히 결혼, 안방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 역시 아직 신혼, 결혼이란 말을 너무 낯간지러워하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좋을지 더 고민했다.


U와 나는 스물 둘 비혼에 관한 입장을 자주 치열하게 이야기 했다. 페미니즘이란 개념을 조금씩 배우며,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고등학생 때는 어른 여성의 인생에 결혼은 당연한 인생 주기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 여과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해맑은 10대는 결혼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20대가 되어서는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가사노동 부담이 여성에게 치우쳐 있고,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 역시 여성이 더 많고,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더 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책, 뉴스, 주변 어른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내 가치관으로는 나를 사랑한다면 결혼은 좋은 선택지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찾기도 바쁜데 나에게 아내, 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내가 사회와 부딪치며 발견할 수 있는 가치를 희미하게 만드는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복잡한 이해관계와 사회적 맥락은 더 생각하지 않고 딱 20대 초반의 좁은 시력으로 쿨하게 비혼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취업을 하면서 주변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함께 비혼을 외쳤던 U는 만 26살에 짝꿍과 혼인신고를 마쳤고, 나는 가끔씩 SNS에서 고등학교 동창, 대학 선후배, 동기들의 결혼 소식을 한 두 건씩 접하기 시작했으며, 어딜가도 대화 주제에 15%는 결혼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상황이 찾아왔다. 스물 초반의 인생 내공으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스물 초반 엄마께 일찍이 비혼을 선언했을 때, 다른 50대보다 비교적 여러 생각을 넓게 받아들이는 엄마는 내 비혼주의를 나무라거나 무시하지 않았지만, 나지막히 "그치만 또 모르는 거야. 나중에는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부쩍 그 반응이 자주 떠올랐다. 50년을 넘게 살아낸 사람의 눈에는 내가 결혼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걸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U는 집을 갖기 위해 혼인을 선택했다. 함께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벗어나자는 의미에서 비혼을 선언한 일이 절대 장난처럼 한 때의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이 바뀐 이유도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U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고, 그 필수조건에는 "내 집"이 꼭 필요했다. 내 주변 지인 중에 가장 셈에 능하고, 계획과 실행에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U는 많은 대출 제도를 찾아보았고, 앞으로의 커리어, 원하는 직장의 모습, 연봉 인상 폭을 고려했을 때, 혼자 버는 1인 가구를 위한 대출을 받아서는 U가 원하는 평수의 수도권 아파트를 살 수 없다고 했다. U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우선해야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을 위한 판단을 내렸다. 직장도 안정되지 않고, 아직은 현실보다 젊은 청춘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쫓고,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나는 U의 선택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U에게 배신감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한 U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존경스러움에 충격이 컸다. 오히려 삶을 너무 흘러가는대로 운에 맡겨 살아가고 있었나, 모은 돈은 얼마나 있지, 내가 그리는 미래는 현실적인가? 이제까지 보지 않았던 부분을 더 둘러보게 되었다.


U의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U와 짝꿍이 나란히 앉아 투닥대는 모습이 귀엽고 편안해 보였다. 나도 저렇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땐 결혼을 생각해보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동거는 맞지만 결혼은 아닌 것 같았다. 경제적인 문제를 깊게 생각하고 대답한 것 같지는 않지만, 누군가와 법적으로 가족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족이 되는 순간 커지는 기쁨보다 남이었을 때는 지켜지던 선이 사라지는 결속이라는 두려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내 편이 생기는 일, 함께 힘을 모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얻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또 잘못된 판단도 내릴 수 있는 존재고 그 책임은 반드시 돌아올텐데 그 무게를 법에 묶어 내 삶에 담기에는 아직 여유 공간이 없는 것 같다.


왜 나는 결혼으로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을지 고민해 보았다. 내가 보고 자란 부모님의 영향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두 집안이 합쳐져 겪게 되는 충돌과 시련을 충분히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무게를 이겨내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부모님이 있어 그 가족에 속하는 구성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면 안정된 가족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통념이 내겐 적용되지 않는다. 자잘한 가정사는 누구나 있는 법이지만 딸, 손녀, 조카, 사촌언니 등의 구성원으로 속하며 충분히 소속감을 누리고 있다. 지금의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이라고 느껴진다. 가족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모습은 용기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평생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타인의 삶에 엮일 일을 만들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라고 스물 여섯에 적는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꼭 남녀의 결혼으로 만들어진 가정의 형태가 아니다. 서로 아껴주는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을 꿈꾼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 담아낼 것이다.) 결혼은 인생에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다가 법적인 혼인을 거부하고, 남녀가 같이 사는 모습만이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는 시각을 얻기까지 긴 시간이 있었다. 또 다시 긴 시간이 흐르면 삶의 모습은 달라지고, 서른, 마흔이 된 나는 스물 여섯에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분명 보게 될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A,B가 아니라 미지의 영역에 있었던 C라는 선택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나를 위한, 내가 행복한 삶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겠지만, 그 형태가 지금과 같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은 지금은 비혼주의입니다만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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