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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y 09. 2024

당신의 미래는 지금이다

10년 만에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간간히 연락 오는 지인에게 카페를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한 바퀴 돌자 요즘 장사 어떻냐는 물음은 없어졌다. 속은 후련한데 똥 싸고 뒤처리 못한 아이처럼 마음속은 늘 찜찜했다. 어차피 알게 되는 거 소문이 돌아 끝이 나니까 뻔뻔하게 지냈다. 




고요한 일상 속에 쿠팡 알바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깨알같이 모인 돈은 잔잔한 보탬이 되었고 5월 가정의 달이 코앞 희망의 빛이라 감사하며 다니자 다짐했다. 어랏. 단비는 나만 찾는 게 아니었구나 알게 되는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5월은 모두 돈이 필요한 달 아닌가 신청하는 알바 자리는 보기 좋게 꽝 다음기회라며 아쉬움과 간절함을 남겨주었다. 



한가해진 몸은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지인 연락이 반가울 텐데 미적미적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웠다. 걱정과 달리 지인은 원예 보조선생님이 필요한데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고 제안해 줬다. 윤여정선생님 말처럼 가난할 때 연기가 더 잘 나온다고 했던가 간절할 땐 생각이 짧아진다. 할 수 있다는 말 대신 언니 고마워가 나올 뻔했으니 말이다. 



갑자기 따라가게 된 유치원 원예수업 보조강사는 이른 시간 쌀쌀함인지 낯선 공간의 떨림인지 살짝 구분이 안되었다. 다행스럽게 종알종알 거리는 아이들을 모습에 웃음이 교차되어 긴장도가 낮아졌다. 유치원 수업 핵심은 단시간 세팅해서 수업시간 안에 결과물과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는 포인트가 숨겨있다. 병아리들과 함께하는 수업은 재미도 있고 그만큼 기운이 쏙 빠지는 수업이라 짧고 굵게 마무리되었다. 지부장은 일머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떠냐고 나에게 물어봤고 10년 전에 플로리스트 과정을 수강하고 꽃집은 못 차리고 웨딩현장에서 알바로 일해보니 노동의 강도가 상상이상이라 살포시 접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오랜만에 꽃을 만지니 마음이 싱숭생숭 요동쳤다. 쉴 새 없이 가위로 꽃을 자르고 부러진 꽃대를 살려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은 일이지만 미소 짓게 해 줬다. 지인은 혹시 다음에 수업이 들어오면 강사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가능하다는 말을 남기고 별 기대 없이 설마 들어오겠어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변함없는 일상 날짜 가는 줄 모르는 나와 달리 어린이날만 기다리는 둘째는 매일 눈뜨자마자 얼마큼 남았다는 뻐꾸기시계가 되었다. 5 월아 조금 천천히 와줘를 외치고 싶지만 가당치 않고 더 빨리 다가왔다. 보조강사 자리는 또 없나 내심 기다려지고 지인 연락은 이제 반가움으로 변했다. 전에 말했던 강사 자리가 비어서 급하게 연락했는데 가능하냐는 제안에 냉큼 할 수 있다는 답을 했다. 말하는 거야 본디 좋아하며 사람 상대는 늘 했던 터라 못 할 것도 없지 자신만만했다. 카카오톡으로 전해온 스펙은 나를 주춤거리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 플로리스트 직업체험수업 5,6교시 26명 쉬는 시간 없이 진행이라는 글은 분명 긴장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준비한 PPT자료를 USB에 야무지게 담아 수업을 하러 갔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노트북에 놀랐고 내가 가져간 USB는 유물처럼 두꺼워 신형 노트북에 맞지 않았다. 식은땀은 여기서부터 시작 이럴 줄 알았는지 남편이 혹시 몰라 메일로 보내란 말이 참 고마웠고 버벅거리지 않고 메일을 열어 수업을 했다. 100분의 수업과 질문 마무리까지 시간 내에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또 한 번 평범하지 않는 내 삶에 성취감을 더했다. 





중1 질문은 대담했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줬다. 내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듯이 청소년의 마음과 질문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누구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질문이 아닐까 한다. 평생 직업이 없어진 지금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경험해 보라는 조언이 얼마큼 전달이 되었을까 아이들에게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꽃꽂이의 모양이 다양하듯 아이의 삶도 다양할 것이다. 




10년 전 배웠던 꽃꽂이 수업은 원예강사로 나를 세웠고 30대 젊었던 청년기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꽃집 혹은 플로리스트를 꿈꿨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꿈은 돈만 낭비했다 생각했다. 인생의 경험은 절망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주춤거리지 않고 당분간 정답 없이 살아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2011년 블로그에 끄적끄적 거리는걸 좋아한 나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순간이 미래다.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두려움만 있지는 않다. 발자국에 성공은 아닐지언정 멈춤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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