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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y 01. 2024

20년 일했지만 경단녀입니다

눈 감았다 뜨면 하루가 자동적으로 시작 그날이 그날 같은 날짜와 시간 속 5월이 되었다. 셀프 어린이날 디데이 설정은 매일 아침 5월은 언제 오냐 다섯 손가락 안으로 넘어가길 소망했다. 어린이는 쉬는 날 선물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쩌면 당연한 행복이다. 어린이날이 지나가면 아쉬워 어쩌냐 물음에 여름에 생일이 있고 그다음 겨울이 오면 크리스마스까지 있으니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며 행복한 미소와 함께 계속 돌고 돌 거란 믿음이 있다. 



일 년 중 공휴일을 제외하고 검정글씨에 쿨쿨 자고 있는 아빠가 신기한 아이들은 왜 자는 건지 물어봤다. 5월의 첫날 1일은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날이라고 이야기해 줬더니 아빠의 날이냐고 그럼 엄마의 날은 없냐고 큭큭 웃는다. 생각 없이 아이들을 따라 큭큭큭 웃다가 그러게 엄마의 날은 왜 없는 거니? 엄마도 일하는데 법으로 엄마 쉬는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투덜거림이 나왔다. 아이들은 어버이날 쉬라며 찡긋 거렸다. 글쎄 어버이는 맞는데 그날이 나에게 쉬는 날인가? 오히려 지끈지끈 적당한 인파에 맛이 보장된 된 곳을 찾는 걱정이 더 앞선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노트북을 펼쳤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신청하려 구비서류 중 졸업증명서 발급받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학업이 멈춰버린 2003년 이후 별로 한 것도 없는데 20년이 흘렀다. 학업은 멈추고 근로의 시계가 돌며 2003년 직장생활은 11년 바통터치 후 육아시기가 왔고 추가로 쉼 없이 카페창업까지 근로의 시계는 멈춘 적이 없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곳에 내 자리는 없다. 



얼마 전 구청에서 경력단절여성 지원사업 공고가 떴다. 선정되면 구직활동에 필요한 교재, 자격증수강료, 면접지원 비용을 30만 원까지 지원해 준다는 말에 얼씨구나 제출했다. 단,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력서 첨부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구직이란 단어조차 생소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손가락은 한 숨을 한소끔 내뱉고서야 구직사이트 이력서를 열어보았다. 10년 전 멈춰버린 경력사항은 건설회사 퇴사로 마무리되었고 그 뒤 채울 경력이 마땅치 않았다. 빈 줄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괜찮아 뭐라도 써보라 용기의 말을 건넸다. 10년을 아무것도 안 하신 건 아닌데 카페창업이라도 추가해 할 수 있는 스펙은 다 넣어 줄 채우기라도 하라 위로했다. 회사 들어갈 때 카페에서 일한건 아무 소용도 없는 경력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차라리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전문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머리 아니면 힘이라도 있으면 좋겠네라는 변명 아닌 변명만 떠오른다. 



11번 근로자의 날 수건도 받아봤고 카페창업으로 쓴 맛도 봤다. 현엄마라는 직업은 무급 돌봄 24시간 대기 중이다. 20년 일했지만 쓸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경력단절 여성은 이것저것 시켜주면 잘할 수 있는데 혼잣말이 나온다. 하루의 삶 속에서 사소한 돌봄 조차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진정한 경력보유여성은 나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할 수 있냐는 물음에 예스를 외치고 덜덜 떨고 있을지언정 불러만 준다면 잘하겠노라 용기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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