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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Apr 23. 2024

도서관 죽순이는 결이 다르다

1월 도서관 지역행사 강연에서 자신감 충만하게 충전했었다. 했다로 끝나면 참 좋으련만 과거가 되어버린 했었다. 노력을 하면 뭐라도 이루어지고 도파민 엔도르핀 아이디어 좋은 건 다 생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지하동굴 떨어지기 일부직전에 건져 올렸다.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은 나 몰라라 푹 쉬고 싶은데 성격에 맞지 않아 주어진 시간도 오롯하게 사용하질 못하는 바보이다. 해야 할 다음 계획이 떠오르지 않아 오히려 괴로웠다. 누군가 앞으로 이걸 하면 취업확정 사이비 말조차 간절할 지경인데 될 만한 것을 추려서 알아보다 보면 나와 맞지 않고 다른 걸 찾다 걸림돌이 떠올라 보고 포기하고 무기력은 덤으로 따라왔다. 



쉴 새 없이 들락거리던 도서관은 강연 이후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닌 걸 들키는 거 같아 대면대면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혼자 단속하고 평가 내려 감정소비는 건강과 글쓰기에도 영향을 주어서 이도저도 못하고 3개월을 꿀꺽 삼켰다. 어미의 휘청거림과 상관없이 둘째 아이는 8살이 되면서 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해 유무와 상관없이 보는 것이 함정인데 영어책 오빠책 엄마책 가리는 것 없이 그림처럼 눈으로 본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딱히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식이 책을 빌려오라는데 뭣을 못하겠는가 들락날락 나르며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추천도서가 반짝반짝 조명을 받고 있었다. 모비딕, 맡겨진 소녀, 이 처럼 사소한 것들, 사라진 것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듄까지 장르를 가지리 않고 둘아이처럼 그냥 읽었다. 모두 극찬하는 도서인데 마음속에 담기지 않고 하나하나 꼭꼭 씹어 삼켰다. 




초라할수록 시간이 나면 책만 마주하고 겨우 아이들 밥만 챙겨주는 어미로 나를 인정했다. 어처구니없는 안식년까지 덧붙이며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다스려보았다. 실상은 나에게 보내는 진짜 위로였다. 정리 안 되는 가게 나오지 않는 알바자리는 야속했고 막상 갔다 오면 몸이 축나기 일 수였다. 일할 곳이 없을수록 일자리를 검색하는 범위가 점점 늘어났다. 교육청 홈페이지 구청 구직란 당근까지 세상에 중고물품 파는 곳에서 집매매와 알바자리가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심각한 상황에 웃음이 나는 거면 인간승리다 긍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건지 독서의 힘이 아닐까 답정너가 되었다. 당근에 알바를 신청하면 당연하게 될 줄 알았던 바보는 쿠팡만이 구원해 주길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봄 새로운 시작이 도서관에 불어왔다. 다양한 행사들이 쏙쏙 올라오고 구직란만 클릭했던 손가락은 독서문화행사로 옮겨갔다. 평소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던 그 버릇은 그린 업사이클 클래스를 신청하며 자격증에 목말라하는 자격 없는 자는 단숨에 좋은 기회라며 이력서에 뭐라도 한 줄 써보자가 되었다. 도서관에 1일 강연자가 되어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배워서 재능기부 더 멀리 강사의 길이 있다면 따를 거라는 욕심도 내어본다. 



뭐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 아무거나 배워 취업이나 빨리 하자는 마음이 공존하지만 의지로 안 되는 것들이 실패자 느낌을 자주 떠올려준다. 취미로 꽃꽂이를 배웠고 원예 보조강사를 다녀오니 식물수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떠올라 설레지만 현실은 단념을 더 빨리 알려주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건 원예수업인데 손길은 업사이클환경공예지도사라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의지라고 해야겠다. 진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배우면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 이 나이면 경험자로 선택이 쉬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어렵다. 



자격증에 눈이 멀었지만 수업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했다. 강의실에 앉아 멍하니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려고 있나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다. 12주 커리큘럼을 듣고 여전히 심드렁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첫 수업으로 수세미를 만든다고 하니 마음에 안 찼을지도 모르겠다. 다이소에 가면 파는 천 원짜리 그걸 만들겠다는 건가 꽁한 마음으로 시키는 데로 따라 하는데 머리가 굳었나 처음부터 버벅거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바로 현실을 알려줬다. 뭐든 쉽게 보았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뇌가 굳었나 식은땀이 났다.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알려주었다. 버벅거리던 손은 조금 자연스러워졌고 어느새 마음도 몽글몽글 니팅룸에 감겨있는 털실 색이 딸기우유처럼 예쁘다 혼잣말이 나왔다.  





돌돌 동그랗게 말려있던 자투리 털실이 한 올씩 감겨 작은 모자가 만들어졌다. 긍정의 기운은 기적처럼 열흘 뒤 다른 도서관 홈페이지에 원예지도사입문과정 공고가 떴다. 자투리 같은 내 인생도 이렇게 귀엽게 변할 수 있을지 딸기 우윳빛 인생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건 일단 미뤄두고 나는 앞으로 나가야겠다'
 그러니까 오히려 안 되는 건 안 되는 채로 같이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 것 같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어디 한번 같이 가보자."

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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