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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06. 2022

마흔, 7천만 원짜리 포트폴리오




서른아홉.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 나이는 기반을 잡고 회사도 안정적으로 다니고 있는 나이였다. 

이 나이 처먹도록 뭐 하나 번듯하게 이룬 것 없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면서도 뭉그적 서울역 노숙자처럼 시간 때우는 뻔뻔함에 구역질이 난다.

시간을 되돌려 출산휴가 갈 때 다시 복직하지 말라며 손에 쥐어주신 돌반지와 오십만 원을 반납하고 꾸역꾸역 다녔어야 했나 후회 한들 은행에서 통장 하나 쉽게 만들 수 없는 내 위치는 달라질 게 없다.



이제 마흔 부모님이 뭐 하나 안 물려주나 두 눈 반짝이기엔 다행스럽게 낯짝이 소가죽보다 두껍지는 않다. 

예전 호기롭게 마카롱 클래스 수업도 가르쳐서 대박도 났었는데 뭐 하나 못할까 싶었다. "내가 인천에 경리단길 한번 열어보겠어" 일주일에 3일~4일만 오픈하면 되니까 할만할 거 같았다. 곧 7호선도 개통되니까 먼저 준비하는 넘이 돈 쓸어갈 일만 남은 거야. 




마음먹자마자 장소를 정하고 회사 다녔을 때 알고 지낸 사람 대학교 동창들 영혼까지 끌어다 모아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러려고 내가 실내건축과를 나오고 그동안 꽃꽂이며 마카롱 클래스 포슬린 페인팅까지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진 것이  헛된 게 아니라며 다 미적 도움이 되는구나 셀프 칭찬까지 들어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잘되어서 남편의 두 번씩이나 날려먹은 사업 실패를 보상받고 싶었다. 진짜 그땐 남편 전화가 무서웠다. 잊을만하면 수리비 명목으로 명품백 하나씩 해 먹었으니 말이다. 너 보다 내 선택은 옳고 현명했어 당당하게 내 돈으로 남편 차도 바꿔주고 평창동 사모님 비슷한 마당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리라 다짐했다.  

자신감은 하늘을 찔러 시집가는 날 신부대기실처럼 준비된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술집만 즐비한 동네에 작고 아기자기한 디저트 가게라니 이런 미친 센스를 말이다.




오픈날부터 만드는 족족 팔렸다. 그동안 내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아이들도 화색이 도는 엄마가 좋아 보였는지 우리 금방 부자가 된다며 행복해했다. 꿈은 항상 크게 가지라고 했던가 이러다 백화점 입점 들어가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봤다. 

몸이 아픈 게 대수일까 돈통에 돈이 착착 쌓이는 기쁨은 우울했던 지난날의 보상과도 같았고 아이언맨 슈트 장착처럼 나에게도 후광이 비치는 거 같았다. 




모든 날이 완벽하게 눈부실 줄 알았던 나의 창업에 싸함이 밀려왔다. 초반 코로나라는 그림자가 다가왔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메르스처럼 조금 지나면 괜찮을 거야 준비가 남들보다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었잖아 이건 작은 이벤트 같은 거라 넘겼다.

이년이 흘러 원재료값은 더 치솟고 고공 행진하던 매출이 점점 하락했다. 처음엔 거지 같은 전염병 때문이라 존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간과한 게 있으니 조용한 이 동네는 말이 7호선 종착역 호재였지 젊은이가 씨가 말라 주민 95%가 노인이라는 사실과 경기 불황으로 젊은이 유입까지 멈췄다. 그동안 남이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다. 



잘 나가는 사장님의 꿈은 날아간 지 오래 낯빛은 더 초라해 더 힘주어 화장으로 감추고 다녔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팍팍해져 가족에게 날이서 살가울 리 없었고 남들은 사구려 재료로 개떡같이 만들어도 찰떡같이 대박이 나는데 뭘 그리 잘 못 살아 코로나까지 들러붙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하느님까지 원망스러웠다. 




역지사지라 했던가 예전 사업실패로 빌빌 거리는 남편의 초라한 눈빛을 외면했었다. 

"정말 지긋지긋해서 넌덜머리가 날 거 같아.  내 소원이 먼 줄 알아? 오빠가 제발 4대 보험 받는 직장에서 월 250씩 꼬박꼬박 받아 왔으면 소원이 없겠어." 그 소리쳤던 말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메아리친다.

"너도 해보니 세상살이 참 엿같지 않냐고 나도 그때 마누라 돈지랄할 정도로 벌어다 주려고 했었다고."



남편이 언젠가 아이에게 훈육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큰 용기는 필요하다고 가혹하게 남겨진 내 마흔 살 포트폴리오는 이렇게 대차게 망했노라 이제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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