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술전시회를 갔다 와서 인지 너무 피곤했다. 내가 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대기가 길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전시회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점심도 대기 없는 프랜차이즈햄버거를 먹고 온 게 전부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선잠을 자다 깨다 몽롱하게 있었더니 눈치 있는 신랑은 냉장고에서 죽어가는 섞박지를 씻어서 지짐이란 요리를 해서 먹고 아이들은 이게 무슨 냄새냐며 마스크와 킥보드헬멧을 쓰고 돌아다녔다. 멍한 엄마일 때는 모든 것이 오케이란 걸 아는 아이들은 실컷 욕실에서 둘이 물총 놀이를 하며 킥킥거렸고 하나씩 씻기고 먹이고 이 닦고 잠자는 착한 날로 마무리를 했다.
피곤이 덜 풀려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다짐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낮잠 탓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억지로 먹으라고 했던 커피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 머릿속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은 독서모임 멤버 중에 한 분이 복직을 하는 날이구나 그녀는 지금 나처럼 잠을 못 이루고 있을 거 같았다. 긴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가는 마음은 어떨까 상상해 보다 예전에 나라면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고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쁜 생각을 가진 여자였다. 아마도 계약직의 삶을 살았던 자격지심이 한가득 붙어 있던 심술이 아닐까 한다. 그녀의 직장생활의 이야기는 만만치 않았고 웃고 울리는 내용이었다. 막무가내 진상 민원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욕이 절로 나왔다. 긴 이야기 끝에 그들을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필요한 건 돈 보다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마음과 단호하게 혼내는 어른의 충고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살아가는 건 혼자도 좋지만 두루 여기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사브작북클럽을 하면 많이 느꼈다. 웃고 울고 싶은 일들이 존재하지만 그 감정을 가족에게 쉽게 드러낼 수 없고 타인으로 위로받고 나아가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고 작은 일에도 응원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끈끈한 모임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희망이 아닐까 한다.
작가님 두 분이 선물해 준 화분
카페에 그냥 오라고 했는데 두 작가님이 식물을 사 오셨다. 식물을 혹시 사 올까 식물 사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까 했는데 그러면 또 뭔가 사 오라는 말이 될까 봐 말을 안 했더니 청초한 식물을 사 오셨다. 작가님 여기는 식물 금지입니다. 장난스럽게 농을 던졌고 그런 거였냐고 받아주었다. 작가님이 돌아가고 며칠 뒤 물을 주다 발견한 식물의 이름은 '화이트 엔젤' 하얀 천사? 오 소름... 식물이름처럼 천사를 내 주위에 보내 주었구나 생각이 들자 달리 보였다. 그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복직 엔젤
다녀간 한 달 뒤 공교롭게도 제일가기 싫은 곳으로 배치되었다고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고 나 역시 지옥 같은 마음으로 3년을 현장에서 버텼기에 그녀답게 괜찮다고 말하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북클럽 멤버들의 위로와 더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일이 힘들지 않기를 모두 기원했다.
작가님의 우아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렇게 꺼내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의 모습이 아마 이런 거 같다. 사브작만에 엔젤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천사를 만날 수 있도록 건강과 미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