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침에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가 세수를 했다. 밤새 마른 건조대의 그릇들을 정리하고, 물을 끓여 차를 준비했다. 잘 우려진 차를 한 모금 따뜻하게 마셔주고서,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깨끗한 물로 갈아주었다. 지난날 어질렀던 것들을 이 방 저 방 다니며 정리한 후, 마지막으로 청소기까지 돌려준 다음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열 몇 개 되는 아이들은 대개가 좋아 보였는데, 이도 멀리서 보면 그저 푸른빛 덕분에 모두가 좋아 보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그들의 건강상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중 오늘 '금사철'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보다 잎이 조금 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사철은 내가 지난 5월 말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서 사온 절지다. 이미 잘린 상태에서 샀기 때문에 금방 시들 줄 알았는데, 8월 중순이 지난 지금도 꽤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오늘 3대의 절지 중 한 대에서 평소보다 많은 누런 잎이 몇 개 발견이 되었다. 떨어진 잎들 중에는 바싹 마른 것도 있었는데, 내가 며칠 동안을 무신경으로 그 곁을 지나쳤는지 짐작이 갔다. 남아있는 아이들 중 마른 것 같은 것이나 약간의 누런 빛을 띤 잎들을 정리해 주고 유리병도 깨끗이 닦아 주었다. 수분 공급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물을 먹을 잘린 단면을 조금 더 다듬어주고 미끌거리는 부분이 없도록 잘 씻어준 뒤 다시 유리병에 꽂았다. 새로 화장을 마친 신부처럼 보송보송하게 되었다.
그러다 유독 짙은 녹색을 띤 이파리가 눈에 들어왔다. 금사철 특유의 옅은 무늬도 없이 샛푸른... 짙은 녹색잎. 이런 색의 잎은 살 때에 원래 없었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새로 돋아난 것임이 틀림없었다. 돋아난 지도 한참 되었는지 잎들이 제법 커져 있었는데, 색 구분이 없었다면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자라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아 너는 새로 태어났구나'
이렇게 팔다리가 잘려나가 있는데도 새로 자라날 수 있다니 놀라웠다. 흙이 담긴 화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새싹을 보며 이토록 놀라워하지는 않았었다. 이 아이에 대한 내 관심사는 오로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인가가 전부였었다. 시험에 사용할 금사철이었고 사용하고 남은 아이들 중 하나였다.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절화류와 절지류는 2주 안팎으로 시들해졌다. 처음 접해보는 절지류였으므로 나는 이 금사철도 절화들처럼 금세 시들어 버릴 줄 알았는데 용케도 더운 나절도 견디고 추운 에어컨 바람도 견디면서 나와 한 여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 팔다리가 잘려나간 아이는 이 와중에 새로운 아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오오! 이토록 놀라울 수가...'
나는 고개를 숙여 내 팔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힘도 없어 보이고 생기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 육체의 팔다리는 힘 없이라도 붙어는 있었다. 내 마음의 팔다리는 몇 번이고 잘려나갔다. 몸통만 남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중, 누군가 심장까지 도려내었고 그 아픔에 내 창자는 꼬여버렸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떨어져 나가기도 했는데, 나의 나이 듦은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냐'라는 무거움을 팔도 다리도 심장도 창자도 성치 않은 몸통 위에 자꾸만 얹혀놓아 숨도 못 쉬게 하였다.
조용히 혼자 있는 밤이면 이런 생각들은 슬그머니 나를 찾아온다. 성한 구석 없는 마음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며 이제는 조그마한 자극에도 놀라는 내가 너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는 점점 스스로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몸통이 잘려 물병 속에 꽂혀 있는 이 절지에서 새 생명이 올라오다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몸통이 잘려나갔음에도 개의치 않는구나.
다시 푸르게 자랄 수 있구나'
다시 태어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