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취소 릴레이와 사랑의 하이라이트

by 박소록


노견인 멘보샤 아가씨와 살아가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2주에 한번 꽃을 정기배송받았다. 청각장애인을 고용하여 구독서비스를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몇 년 사이 꽃이 좋아져 구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사이즈로 구독했다가 더 풍성한 꽃을 받고 싶어 사이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받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 수단 혹은 계기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생리주기, 2주마다 바뀌는 포지션, 다가오는 도서반납일, 월급날. 그리고 2주마다 돌아오는 꽃 배송도 그 리스트에 들어간다. 꽃이 오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니, 이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삭막하기만 한 나의 세계에 아주 약간의 낭만이 더해진다. 꽃도 물론 좋았지만, 긴장도 높은 일상에 피어난 그 낭만도 좋았다.


그러나 오늘, 그 꽃구독을 취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앱스토어에 들어가 쓸데없이 구독되어 있는 건 없는지, 필수로 구독해야 하는 것 중 요금제를 연간 요금제로 바꾸면 저렴해지는 건 없는지 뒤져 보았다.




그건 바로 병원비 때문이다.

사실 멘보샤 아가씨의 생활은 노견이 되어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 평소처럼 먹고 싸고 사고 치는 게 일상.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꼬랑내 나는 양말을 여전히 좋아해서 집에 귀가하는 사람 발만 바라보는 것도, 시간밥을 꼬박꼬박 먹어 새벽 네시 반부터 사람을 깨우는 것도, 부엌에서 요리할 때마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까지 누른 구독자처럼 재빠르게 달려와 쿡방을 시청하는 취미생활도.


꾸준히 먹는 약이 생기고, 다리를 가끔 절뚝이고, 잠이 늘었다는 건 평범히 흘러가는 일상에 비하면 아주 조그만 틈이다. 아가씨가 노견이라는 걸 깨닫는 건 내가 아니라 내 통장이 먼저였다.



그렇다. 내 통장은 절절히 느끼고 있다.

통장이 더 촘촘하게 쪼개진다. 26주 적금을 끝없이 넣는다. 매달 타는 적금의 절반은 병원비로 저축되고, 저축되자마자 빠져나간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방법 중 가장 마음 아픈 건, 아가씨의 병원 예약 날짜를 챙기는 일.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혈소판 감소증 때문에 주기적으로 내과진료를 받는데 2주 전, 급격히 뿌예진 한쪽 눈 때문에 안과진료도 함께 잡았다. 분명 이것저것 검사를 할 테고 그럼 이번 달 진료비는 내 예상을 훌쩍 넘겠구나 마음의 채비를 마치고 갔으나 키오스크에서 수납버튼을 눌러 금액을 확인할 때는 조금 조마조마했다.


럭키라고 해야 할까. 아가씨가 검사를 받는 사이 통장들 잔액을 확인하다 생활비 통장의 잔액이 이상할 만큼 많다는 걸 발견했다. 보니까 3월에 생활비를 두 번이나 이체한 내역이 있었다. 병원비 통장의 잔액과 실수로 이체한 금액을 합치니 딱 이번 병원비가 나왔다. 멍청한 건망증이 나를 도왔다. 바보 같은 인간, 어쩐지 3월에 생활이 조금 빠듯하더라니. 그래도 비상금 통장을 건들지 않고 커버할 수 있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주기적으로 안과진료도 받으려면 확실히 돈을 아껴놔야겠단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구독취소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제부터 소비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철저히 지불한 돈과 구매한 것의 가치를 비교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짝 조인 마음으로. 꽃다발을 멘보샤 아가씨와 바꿀 수 있다면 수지맞는 장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절약정신을 기르면 어떨까? 신통방통한 점은, 이 아가씨가 내 연봉이 오르는 걸 어찌 알고 이 타이밍에 병을 하나 더 추가하나 싶은 것이다. 똑똑한 녀석.


낭만 하나를 포기하고 늙은 강아지와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지친 아가씨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들어 택시 기사님이 “숨은 쉬니?” 하며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나는 한창 꽂혀있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다 첫 구절의 가사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황혼에 물드는 들쭉날쭉한 그림자

너와 보는 저 불꽃놀이가 좋아.”


우린 몇 번의 노을을 보았을까. 아가씨와 진짜 불꽃놀이를 본 적도 있었다. 내 품에 안겨 있던 아가씨는 인생 첫 불꽃놀이를 보고 놀라 내 옷에 온통 쉬를 갈겨놨다. 나는 화장실을 급히 찾아 손빨래를 하며 투덜거렸다. 무더운 여름밤, 축축한 티셔츠, 귀를 잔뜩 눕힌 채 엄마에게 안겨 있던 멘보샤 아가씨의 멍청한 얼굴, 그날의 화는 설탕이나 소금 같은 거였는지 티셔츠를 빨 때 모두 다 녹아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남산을 산책하다 아주 우연히 불꽃놀이를 또 보았다. 돗자리나 작은 텐트를 펴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보고 그곳이 여의도 불꽃축제의 명당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명당을 선점하지는 못했지만 그곳은 아가씨와 나의 오랜 산책코스였고, 한적하면서도 불꽃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남은 불꽃놀이를 나란히 앉아 보았다.


불꽃놀이는 원래 끝으로 갈수록 하이라이트에 가까워지니까, 우리는 불꽃놀이의 액기스를 즐긴 것이었다. 아가씨는 아마 관심도 없었겠지만 곁에서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그 시절, 아가씨는 하루에 두 시간씩 나를 산책시키는 튼튼 강아지였다. 이미 일곱 살이었는데도 그랬다. 웬만한 일에는 이제 귀를 눕히지 않는, 무서울 게 많지 않은 안정형 강아지가 되었다. 쉬를 갈기던 올챙이 시절은 다 잊었는지 펑펑 터지는 불꽃소리를 심드렁하게 무시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두 시간씩 산책을 할 때면 참 고단스러웠는데, 요즘은 그 시간이 너무, 너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그립던 참이었다. 가사 한 줄에 눈물이 고일만큼 그리워서.



“이곳은 낙원이 아닌 흔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네가 있는 것만으로 좋아.”


늙는다는 건 서글프기만 한 것일까.

우리의 일상이 불꽃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끝이 다가올수록 하이라이트로 나아가는.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통장의 잔액을 억척스러운 눈길로 확인하며 이따금 숨은 쉬는지 코끝에 손을 대어 보는 요즘의 일상이, 아무리 좋은 말로 치장해도 이별이 가까워짐을 느끼는 매일이 어떻게 덤덤하기만 할 수 있을까. 서글픈 건 내 강아지가 늙는다는 사실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데 말야, 네가 늙는다고 내 사랑이 늙겠니.

만남에 끝이 있다 해도 이 사랑에 끝이 있겠니.

이 사랑이야말로 불꽃놀이처럼 끝을 향할수록 하이라이트란 걸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아가씨의 늦은 밥과 물을 챙겨주며, 코를 박고 냠냠하는 아가씨를 보며 이 사랑이 그 불꽃놀이라고, 하이라이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존재하는 걸 사랑하는 건 영원과는 거리가 멀다. 영원은 모든 것의 이전, 모든 것의 이후. 지금 이 순간을 홀연히 떠나버리는 것, 허공의 뜬 별과 태양과 달처럼 지상에 어떤 발자국도 남기지 않는 것. 언젠가의 언젠가, 아가씨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에 이 사랑은 영원에 닿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하이라이트. 그러니 꽃 한 다발의 낭만쯤은 빛도 못나게 할 만큼 치사량의 낭만이, 이 사랑에 있다.




불꽃놀이 소리에 놀라 내 옷에 쉬를 갈기던 어린 날의 아가씨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