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마음으로 종이접기

by 박소록


자려니 잠이 오지 않아 잠시 밤마실을 나왔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자려니 눈물이 마구 쏟아져 집 밖으로 나왔다.

우리 강아지는 말이에요, 제가 훌찌럭 거리면 시끄럽다는 듯 T나게 한숨을 포옥 쉬고 방을 나가버리는 대문자 T 강아지예요. 그래도 같이 사는 반려인간이 울면 기분 좋지만은 않을 테니 모기에 피와 살을 내어주는 것을 택했다.

오늘은 병원에 다녀와 억지로 작업을 했다. 내일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해서 유의미한 피드백을 받을 정도로만 썼다. 작업하는 내내 아가씨의 코 고는 소리가 함께했다.

​ 이런 별일 없는 일상이 대부분인데 이따금, 마음 놓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멘보샤 아가씨가 늙어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게 예전에는 심장이 뭉텅뭉텅 잘리는 슬픔일 줄 알았다. 실제로 겪어보니 그런 종류의 슬픔이 아니다. 심장을 아주 여러 번, 꼬깃꼬깃 접어내는 슬픔에 가깝다. 처음에는 혈소판이, 그다음에는 십자인대가, 그다음에는 백내장이 내 심장을 접어버렸다. 꼬깃꼬깃한 심장 때문에 너덜너덜한 기분이 든다.

요즘 모 밴드 라이브 영상에 빠져있는데 그런 댓글을 보았다.

“한 사람의 청춘을 빌려 행복하였으니

그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하겠습니다”

하필 이 순간 저 문장이 떠오르다니.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온마음이 날 위로할 수 있는 말을 찾으려 애쓴다. 애쓴 결과 수많은 문장 중 저 댓글을 끌어올렸다. 저 올곧은 고백이 부드럽게 관통한 순간, 그 감동이 뜨겁고 매끄러워 꼬깃꼬깃 접힌 심장이 다림질되는 느낌이다.

종이처럼 얄팍한 심장으로 이 사랑을 감당하기란 아무래도 쉽지 않다. 문득 장미 접는 법이 생각난다. 중고등학생 때, 연애하는 친구들을 위해 종종 장미 접기 품앗이를 했었다. 종이를 꼬깃꼬깃해질 만큼 접고 또 접은 다음 장미 모양을 잡았던 게 생각난다. 그 너덜너덜한 종이가 부피감을 지닌 꽃이 되었던 게 생각나서 방금 장미 접는 법을 검색해 보니 서른여섯 개의 네모칸을 만들 만큼 접고 접어야 장미가 만들어지더라. 이 얄팍한 마음도 사랑을 담아 접으면 장미가 될 수 있으려나.

그러니까 이왕 접혀버릴 마음, 마구잡이로 구겨지지 말고 반듯하게 접히자. 반듯하기 접히기 위해 올곧게 슬픔을 고백한다. 며칠 사이 급격히 한쪽 눈이 뿌옇게 변해 병원에 갔을 때, 급성 백내장 판정을 받았다. 아가씨의 나이 열여섯, 마취로 재우기엔 다시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렵다. 선생님도 무작정 수술을 권할 수는 없는 상태. 한쪽 눈의 시력은 멀쩡하니 안약으로 염증 관리 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기로 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꾸만 수술을 시켜줘야 했던 걸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영 좋지 않다.

시력이 흐려져가는 과정을 아가씨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무래도 나는 인간이라 강아지인 멘보샤 아가씨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대문자 T 강아지답게, ‘이쪽 눈은 이제 글렀군. 그럼 남은 한 눈으로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하며 슬픔 없이 받아들였을까. 나는 F와 T가 반반인 사람이라 자꾸만 강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래봐야 인간의 오해일지도 모를, 추측에 가까운 생각들을 자꾸만 되뇌고 이 생각이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어쩌면 내가 아가씨의 청춘을 빌려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눈물이 난다. 지나간 시절이 너무 찬란해서 아쉬운 것이다. 이 아쉬움이 나만의 욕심이었으면 좋겠다. 아가씨가 나처럼 슬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여전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며 어제 같은 오늘을 반복하듯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 멘보샤 아가씨가 지금도 행복한 마음이면 좋겠다. 그럼 나는 마음이 꼬깃꼬깃 접혀도 장미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장미를 접던 여자친구들처럼, 나도 내 얄팍한 마음을 반듯하게 눌러 접어 장미로 만들 것이다. 출근을 하고, 퇴근해 아가씨 약을 챙겨 먹이고, 부지런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작업하면서 아가씨에게 하기 싫다고 여느 때처럼 칭얼거리고, 칭얼거리고 나면 다시 작업을 하고, 돈을 벌고, 꿈을 꾸고, 홍수 같은 슬픔에 침수되지 않기 위해 감정의 하수구에 낀 쓰레기를 자주자주 치우고, 그렇게 나 자신을 지켜내며.

그리고, 그렇게 지킨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아가씨를 사랑하고,

아가씨가 그 어떤 모습이어도, 얄팍한 종잇장 같은 마음이 장미가 될 때까지 붉게 사랑하고.




백내장과 아가씨. 아… 머리카릭 좀 치우고 사진 찍을 걸.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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