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취미생활

by 박소록



길어버린 발톱, 멘보샤 아가씨랑 가장 사이가 나빠지는 일과는 발톱 깎기. 어릴 적부터 발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더랬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꼬랑내 나는 양말을 지금도 사랑하듯, 아가씨는 발 만지는 것만큼은 아직도 싫어하시네요. 어쩌니. 너는 발이 네 개나 있는 네 발 짐승. 포메 셀프 미용도 유튜브로 독학해서 해보았지만, 미용보다 싫어하는 건 발톱 깎기. 하루에 한 발도 발톱 깎기를 마무리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싫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가씨. 예전에 애견미용샵에서 미용할 때마다 어딜 가든 너무 얌전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안 새는 기적이었던 걸까. 내 전문성이 부족한 걸까. 아마도 후자의 문제겠지만 미안, 내 전문성이 어떻든 말이야. 언니는 발톱 깎기를 들었고 하나의 발톱이라도 썰어야겠단 말이다. 게다가 이건 네 생활의 편리와 직결되는 것이라 언니도 후퇴할 마음이 없고 말이야.


남의 일이라면 이리 쉽다.

지금 참으면 미래에 더 행복해지는 일이 있는 거라고, 그리고 지금 네가 미루고자 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이라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가씨에게 흔한 인생 조언을 한다. 물론 나도 그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한 당사자가 되면 나 역시 도망치기 바쁘니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럴 때면, 강제성을 부여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아가씨를 꽉 끌어안고 발톱을 자른다. 그렇게 내 품 안은 언제나 아가씨에는 강제적인 공간. 그래서 안기는 것도 싫어하나.

신중하기만 하다가는 아가씨의 인내심이 빠르게 고갈되어 버릴 것이다. 재빠른 결단으로 하나하나 발톱을 잘라간다. 시간의 흐름이 담긴 조각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깔끔하게 떨어져 나온다. 품 안의 아가씨를 어르고 달랜다. 이렇게 자르고 또 기르자. 함께하는 날들을 눌러 담아 발톱을 기르자. 그리고 또 잘라내자. 잘라내도 발톱이 자라날 것을 의심하지 않듯이 우리가 앞으로도 내 예상보다 오래 함께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단다. 이 귀찮은 짓거리를 오래도록 해보자.


그러니 제발 한 개만 더 자르자고, 아가씨야.


손톱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걸 보면 내가 또 한 챕터의 시간을 무심코 흘려보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 소중한 시간에,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 서글퍼진다. 그런 식으로 무의미하게 지워지는 수많은 1분 1초. 어차피 인간의 기억은 용량의 한계가 있으니 망각에 발버둥 치며 기록해두고 싶다. 아가씨의 네 발의 발톱을 3일에 걸쳐 잘랐다. 이번 주의 가장 큰 미션 하나를 성공했다. 손바닥에 담긴 발톱이 너무나 귀여웠다. 세상에 천방지축 아가씨는 하나로 족하니까 쥐에게 넘겨지기 전에 얼른 쓰레기통에 고이 넣었다.

어딜 돌아다닌 건지 때가 탄 발톱도 귀엽고, 구름같이 방에 뭉쳐있는 털뭉치도 귀엽다. 한평생, 어떻게 안 귀여운 구석이 없는 깜찍한 생을 살아가는 거니. 그것도 신기하지만 가장 신기한 건 그 깜찍한 생이 바로 내 곁에서 흐른다는 사실. 아주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미지의 획기적인 사건을 위해 ‘기적’이라는 말을 미리 만들어두고 그 획기적인 사건을 기다리는 것은 마음의 남모를 취미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아가씨를 보면, 이 만남의 기적을 느끼면 내 마음의 취미생활이 윤택하게 이어져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피 보지 않고 발톱자르기 성공!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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