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2
'내 삶을 바꾸는' 같은 말이 붙은 책을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별 다섯 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필독!, 전 세계 독자들의 격찬…. 이런 수식어가 표지에 적혀있으면 그게 무슨 주제를 다루든 빠르게 지나친다.
난 너절하고 꼬질꼬질한 지금의 삶이 좋단 말이에요! 비명을 지르면서.
그런데 오늘은 뜬금없이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이라는 책을 빌렸다. 빌리면서도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중간에 덮어버릴 것을 대비해서 내 취향의 책들을 여분으로 더 빌려왔다. 테이블에 놓인 연분홍색 표지를 보는데 덜컥 걱정부터 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굳이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을 빌려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나의 일기장을 위해서이다. 하하. 더 정확히는 지금보다 더 풍성한 기록을 하고 싶어서이다.
요즘은 일기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두 페이지 짜리 주간 일기장에 오늘을 세 줄 정도로 요약해서 적는 것도 재미있고, 지난번에 <어른의 일기>를 읽고 새로 산 감정 일기를 빼곡히 쓰는 것도 재미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단을 필사하는 것도 너무너무 재미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나는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었다. 적을 거리. 적을 거리를 달라.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은 제목 그대로이다. 1년 52주,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1년 동안 매주 기록할 거리를 정해주는 책이다. 저자인 셰릴 리처드슨은 미국에서 제일가는 라이프 코치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 한국인의 성미에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지. 나는 이 책을 1년간 매주 읽는 대신 하루 만에 해치워버리고 마음에 드는 내용만 골라 메모하기로 했다. 52주, 총 52개의 기록 주제 중 엄선한 내용을 이곳에 공유하겠다. 개 중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여러분도 한 번 적어보시길!
새 다이어리를 샀을 때 목표보다 먼저 적을 것: 작년 나의 성취 기록하기
이것은 쉬우면서도 아주 의외의 기록법이었다. 보통 다이어리를 사면 한 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적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작년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다이어트하기? 작년에 실패했지, 올해 첫 페이지에 또 적는다. 새 포폴 만들기? 이것도 하다 말았잖아. 책 100권 필사하기? 음, 올해는 아예 하지도 말아야겠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제 나의 성취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뒷전이 된 나의 성취를 첫 페이지에 적고 승리감에 도취되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나를 지치게 하는 요소 제거: 어떻게 제거할지, 보상은 어떻게 할지 까지도 적어보기
집이나 직장, 인간관계에서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에너지 구멍’이라고 부르더라. 에너지 구멍을 찾은 다음엔 그 구멍을 어떻게 메울지도 생각하고 적는다. 힘든 일일수록 작은 단계로 쪼개면 좋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을지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끝인 줄 알았죠? 하나 남았다. 구멍을 메운 후 내게 어떤 보상을 할지도 생각해두어야 한다!
나의 소신을 인지하고 지킬 방법 찾아보기
소신이라는 단어를 읽거나 들은 지가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책에서 나의 소신이라는 말을 읽자마자 설레버리고 말았다. 나의 소신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정의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도 나의 소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어볼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해 정한 내면의 원칙을 적고, 일상에서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도 돌아보자. 지키지 못한 적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소신껏 살 수 없는지를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소확행 찾기
미국인이 쓴 도서에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방심했다.
어쨌든, 이제는 조금 유행이 지나버린 소확행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기. 딱 다섯 개 만!
가장 소중한 관계 챙기기
이 대목에서 가장 뜨끔했다. 책의 52주 중 끄틀막에는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온다. 아무래도 연말이라서 그런가 보다. '가장 소중한 관계'라니, 솔직히 낯간지럽다. 나는 혼자가 좋고, 내심 나의 독립성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중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겠지. 반성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누군지 적고, 더 돈독한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어본다.
여기에 나만의 항목 하나를 더 추가했다. 생일에 주고 싶은 것 미리 적어두기!
짠. 여기까지. 총 52가지 실천법 중에 딱 다섯 가지만 골라왔다. 어떻습니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거 봐, 이런 얘기할 줄 알았어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전부 읽고 난 다음에는 생각보다 개운했다. 의외로 적어둘 만한 충고들이 있었다.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한 코칭 도서보다 더 별로였던 것은 바로 나의 편견이었나 보다.
직업적 성취와 개인적 성취가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지속적으로 이를 언급한다. 장례식에 당신의 상사가 찾아와서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할 것 같은가? 같은 뼈 때리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래 맞아.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야겠어, 같은 소박한 다짐을 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생각,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언뜻 중요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내 삶을 대가로 남의 인정을 받는 꼴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을 덮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너절하고 꼬질꼬질한 작고 귀여운 나의 삶. 라이프 코치의 도움 따위 필요 없이,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것.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재미와 소중한 것들과 사랑을 더해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을까?
오늘은 엄선한 다섯 가지 실천법 중 딱 하나만 골라서 기록해 볼 예정이다. 당근 편식하기를 그만둔 아이처럼 내게 작은 보상을 곁들여야지! 돌아가는 길에 소품샵에서 귀여운 스티커를 그득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