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터키, 이스탄불에서
엔트로피 :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적 개념
네겐트로피 : Negative + Entropy의 합성어,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나타냄
엔트로피적인 지난 3년과, 네겐트로피적인 현재.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이 한 권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이스탄불 신공항은 그 어느 공항 못지않게 깨끗했다. 개항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깔끔한 화이트톤 인테리어에 공항 이용객 보단 직원이 더 많았다. 뭐랄까 공항보다는 신축 오피스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상하이에서 온 우리 비행기 사람 밖에 없어 빠르게 입국심사를 받고 공항에서 시내를 잇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역에 들어서 이스탄불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형태의 패스를 하나 샀다. 정확히 몇 리라인지는 모르겠으나 한화 4만 원 정도를 지불했던 것 같다. 이스탄불에서는 그리 오래 있을 건 아니지만 일주일정도는 지낼 것 같아 일주일자리 패스를 구매했다.
발급받은 카드 형태의 패스를 개찰구에 찍고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플랫폼에 들어서 호텔로 어떻게 가는지 노선도를 보고 있었는데 옆에 어떤 남자가 나에게 중국어로 묻는다. 갑작스러운 중국어에 놀란 나는 영어로 말했다.
"Sorry, I'm Korea." ("미안해요. 난 한국인이에요.")
"Oh! Sorry, How can I get to the Blue Mosque?" ("오, 미안해요. 혹시 블루 모스크로 어떻게 가나요?")
중국인이었던 그는 내가 든 샤오미 쇼핑백을 보고 같은 중국인인 줄 알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휴대폰 속 구글맵을 켜 이리저리 살펴본다. 출발지는 이스탄불 신공항, 목적지는 블루 모스크. 터키어로 된 지하철 노선명은 못 읽었지만 노선 컬러를 보며 그에게 알려줬다. 그는 고맙단 이야기와 자기가 유심을 사지 못해 인터넷이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늘어놨다.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온다. 그는 나에게 딱 붙어 자연스레 내 옆자리에 앉는다. 플랫폼에서부터 열차까지, 동양인 행색의 사람은 나와 그 밖에 없으니 나도 그와 함께 가는 것이 썩 나쁘지 만은 않았다. 악수를 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짧은 머리에 네모난 뿔테 안경, 흰색티에 스키니진 차림을 한 그는 현재 미국에 유학하고 있고 오늘, 자기 고향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이스탄불을 경유했다고 한다. 어제 상하이의 나와 같이 8시간 남짓한 짧은 경유 시간 동안 이스탄불의 대표 관광지, 블루모스크를 보러 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와 그, 몇몇의 사람들을 태운 지하철은 이스탄불의 시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공항철도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속도는 빨랐고 내부는 쾌적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실내에서는 와이파이와 LTE, 인터넷이 되지 않아 나와 그는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 만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아마 공항철도의 종점역이었을 것이다. 열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내렸으니, 나와 그도 내렸다. 나는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탁심광장, 그는 이스탄불 구시가지의 블루 모스크가 목적지였으니 나와 그는 다른 노선의 열차로 갈라질 차례였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그에게 블루 모스크까지 가는 길을 캡처해 에어드롭(Airdrop)으로 그에게 보내줬다. 그렇게 나와 그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여정으로 들어섰다.
내가 잡은 호텔은 이스탄불 중심 탁심광장과 그리 멀지 않은 시슬리(Şişli)에 위치해 있었다. 공항철도에서 다른 노선의 지하철로 환승하여 20분 정도를 더 가니 시슬리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한국보다 1.5배는 더 빨랐다. 출구로 나오니 강한 비트와 흥겨우면서도 한 서린 목소리가 섞인 튀르크체 팝(Türkçe Pop)이 들려왔다. 햇빛은 쩅쩅하고 거리는 저 먼 곳까지 직선으로 뻗었으며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거리의 가로등마다 터키의 국기와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의 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다. 나의 팔과 얼굴결에 닿는 따스운 바람과 함께 두 개의 깃발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걸어갔다. 5분 정도의 걸음, 한국의 규칙적인 보도블록이 아닌 울퉁불퉁한 콘크리트의 바닥으로 걸어가는데 꽤나 힘들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자니 시간이 일러 한,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오란다. 짐을 맡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가지고 있는 달러를 리라로 환전하기 위해 근처 유명 브랜드 호텔로 갔다. 예전에는 호텔 리셉션에서 환전도 해줬으니 여기서도 리셉션 직원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 해준단다. 근처 멀지 않은 곳에 환전소가 있다 하여 가는 길을 적은 쪽지를 받고 환전소로 갔다.
작고 아담한 하지만 철창으로 둘러 쌓인, 샤프한 이미지의 환전소에서 50달러 몽땅을 리라로 바꾸고 나왔다. 대로변으로 나와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마침 점심시간에 배도 고파 바로 앞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터키 오리지널 스타일의 식당, 식당 한편에 진열되어 있는 요리를 하나씩 골라 자리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거기서 맛있어 보이는 양고기 요리와, 고기와 몇몇 야채와 함께 볶은 필라프(터키식 볶음밥), 그리고 레드빈 수프를 골랐다.
요리를 고르고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햇빛은 쨍쨍하지만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날씨이니 테라스에서 오찬을 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점심시간인데도 다들 식사보다는 커피나 차이(Çay / 터키식 홍차)를 한 잔씩하고 있었다. 다른 유럽권 나라처럼 자리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태우며 말이다. 마침 배고픔에 입이 심심했던 나는 저 멀리 서있던 종업원에게 탄산수 한 잔과 재떨이를 부탁하였다.
따뜻한 레드빈 수프를 시작으로 양고기, 필라프 순으로 요리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따뜻한 레드빈 수프는 다들 상상되는 맛이었다. 따뜻한 콩국 맛에 점성이 더해져 부드럽게 내 입을 넘어갔다. 수프로 입맛을 돋은 나는 양고기 요리를 맛보았다. 생김새로 보면 아무래도 양갈비살이었던 것 같다. 나이프로 뼈를 분리하고 작게 쏠아 먹어본다. 고기에 수분이 없어 퍽퍽했지만 옆에 곁들인 소스와 야채를 함께 먹으니 나름 먹을만했다. 이것 또한 모두가 예상가능한 맛이었다. 이제 곁들임이나 메인 디시 말고도 주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문한 필라프를 보자. 음식을 붉게 만드는 고추류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볶음밥과 다르게 약간 붉그스름 한 색을 띠었다. 숟가락에 떠먹어본다. 어느 중동 쌀요리가 그렇듯 쌀에 찰기가 없어 잘 흩어진다. 고슬고슬한 느낌에 풍부한 버터맛, 약간씩 씹히는 고기에 산초와 같은 강한 후추향이 느껴진다. 내가 예상했던 볶음밥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다. 무엇보다 버터맛과 향신료향이 강했다. 이를 제외하고는 잘 볶아진 아주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먹는 것 같았다. 향신료에 큰 거부감이 없던 나는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도 차이 한잔을 시켰다. 종업원이 잘록한 허리에 둥그런 몸을 가진 유리병을 내려놓고 주잔자에 담긴 차를 따라준다. 겨울이 아님에도 찻잔에서 김이 난다. 입술을 둥글게 하여 호호 불고 한입 마셔봤다. 별 다를 것 없는 홍차맛, 우리가 흔히 마시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 보다 얼그레이 티에 가까운 맛을 낸다. 그럼에도 맛은 같지만 찻잔이 새로워 그런지 원래보단 다르게 느껴진다. 홍차 한 잔을 마시니 아까 먹었던 기름진 음식이 다 소화되는 것 같았다. 한국의 봉다리 커피처럼 터키에 차이도 식후땡의 역할을 하나보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간다. 1박에 3~4만 원 정도의 숙소이지만 침대에 욕조까지 훌륭하다. 한국과 터키의 시차는 6시간, 침대에 앉으니 잠이 몰려온다. 시차는 그리 나지 않지만 하루에서 이틀 내내 비행기를 타며 이동했으니 피로가 몰려올만하다. 대충 입고 있는 옷을 벗어놓고 침대에 눕는다. 잠시 잠에 들어본다.
아, 놀랍게도 이번 잠엔 오랜만에 꿈도 꿨다. 그리고 놀랍게도 꿈에서는 차이 맛이 났다.
아무래도 깊이 잠에 들었다는 것이겠지.
서울에서는 잠들지 못했던 내가 7,900Km가량 떨어진 이스탄불에선 달콤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