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Shanghai

04 / 중국, 상하이에서

by 연휴
엔트로피 :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적 개념
네겐트로피 : Negative + Entropy의 합성어,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나타냄
엔트로피적인 지난 3년과, 네겐트로피적인 현재.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이 한 권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약간의 흔들림에 눈을 떴다. 창문 덮개를 열고 바깥을 보니 푸른 잔디밭 사이로 낮은 집들의 형태가 보였다. 그리고 그 형태는 점점 선명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현재 시간을 봤다. 이륙 후 1시간 2~30분 정도가 흐른 시간, 이제 곧 착륙하나 보다. 몸은 개운했다. 이륙하자마자 곯아떨어졌으니 한 시간 반정도 잔 건데 그 어느 때 잔 것 중에 가장 깊은 잠에 들은 듯하다.


창문 밖, 이젠 도로에 있는 글씨가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얼마 안돼, 비행기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린다. 안내 방송이 들린다. 희미한 중국어로 상하이에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비행기에 내려서 공항과 비행기를 이어주는 브리지를 걷는다. 10월 어느 날인데도 한국과는 다른 습함, 그리고 후덥지근함이 느껴진다. 공항에서 나와 지하철 역까지 한참을 걸었다. 건물 안으로 공항과 역이 이어진 것이 아닌 공항과 역이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 보도블록을 따라 걸었다.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걷는 사람부터, 상의를 반쯤 말아 올려 흔히 베이징 비키니라고 불리는 차림을 하는 사람까지. 그 어떤 것보다 여기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었다.


상하이에서의 경유시간은 몇 시간 남짓,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짐을 질질 끌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짐 맡길 곳을 찾아야 했다. 원래라면 공항에 맡기는 것이 베스트였지만 서울에서 도착한 공항은 홍차오, 이스탄불로 출발하는 공항은 푸둥이여서 공항에 짐을 맡길 수 없었다. 상하이 어디서나 접근하기 편한 곳, 지하철역 근처 위주로 짐 맡길 곳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상하이역 공공 짐보관소가 있었다. 가격도 괜찮은 것 같아 바로 상하이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10월임에도 상하이의 날씨는 따뜻했다.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 반팔을 입기에는 쌀쌀하기에 캐리어에서 얇은 바람막이를 꺼내 걸쳤다. 홍차오 공항에서 상하이역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3번의 환승을 걸쳤고 중간에는 환승하는 노선이 헷갈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리저리 물어봤다.

상하이역 광장, 권위적인 건축물들이 많았다.

플랫폼에서 나와 상하이역 광장을 가로질렀다. 설이나 추석도 아닌데 사람이 무지하게 많았다. 양손 가득 짐꾸러미를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무표정한 얼굴로 종종걸음을 하는 내가 대비되었다.


역 한구석에 있는 짐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휴대폰도 충전할 겸 근처 카페를 찾아보았다. 구도심, 역사 근처여서 그런지 흔히 말하는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는 없고 스타벅스, 루이싱 커피(Luckin Coffee)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만 있었다. 중국까지 와서 스타벅스를 갈 수는 없었기에 중국 카페 프랜차이즈, 루이싱 커피로 갔다.


가게에 들어가니 손님이 앉을 수 있는 몇 개의 라운드 테이블, 카운터는 없고 오직 커피머신만 올려져 있는 긴 바테이블만 있었다. 어디서 주문을 해야 하는지 몰라 옆에 서있는 한 여성에게 물어봤다.


"喂你好, 在哪裏點菜" (저기, 어디서 주문하나요?)

"扫把" (스캔해요.)

그녀는 짧고 분명하게, 두음절로. 그러고 QR코드가 그려진 포스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랜만에 와서 잊고 있었다. 중국은 이제 현금도, 카드도 안 쓴다. 몇몇, 가게에서는 현금과 카드를 받지만 대부분 모바일 폰으로 하는 QR결제만 지원한다.


QR을 스캔하고 冰美式咖啡(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켰다. 결제는 위쳇(중국판 카카오톡)에 등록되어 있는 카드로 바로 결제하였다. 5위안, 우리 돈으로 1,000원 남짓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원두를 볶다 못해 태워 고소함보단 씁쓸함이 강한 커피, 두세 조각 남짓의 얼음으로 미지근한 커피는 1,000원이라는 값어치를 생각하면 나름 훌륭했다. 커피를 쪽쪽 빨며 이제 어디를 갈지 생각해 본다.


카페에서 나왔다. 시내에서 공항까지의 이동 그리고 공항 내에서의 수속시간을 또 생각하면 상하이를 둘러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역과 비교적 가까운 난징동루만 둘러보기로 했다.

난징동루로 가는 길, 마침 학교 하교 시간이었다.

카페에서 난징동루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탈 수도 있었지만 심심함에 야릿한 10월 날씨를 만끽하고 싶어 걸어가기로 했다. 하굣길 아이들이 걷는 풍경, 고가도로를 타겠다고 이리저리 끼어드는 차량, 저녁장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상인까지. 1시간 정도의 이동으로 상하이를 충분히 담아볼 수 있었다.


평일 오후 4시임에도 난징동루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화려한 간판과 이와 상반되는 오래된 웨스턴 스타일의 건물들, 한국에서는 난징동루를 중국판 명동이라고 하는데 난징동루는 명동과는 또 다른 매력들이 숨겨져 있었다. 난징동루를 쭉 걷다가 샤오미 매장을 발견해 들어갔다. 깜박하고 보조배터리를 한국에서 안 가져와 이번 여행에 보조배터리에서 사용할 보조배터리와 간단한 필기루를 샀다.

저녁을 마주하던 난징동루

매장에서 나와 난징동루를 조금 걷다 보니 공기가 선선해지고 하늘이 서서히 붉그스름 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 하늘의 색은 아직도 선명하지만 햇살의 움직임으로 주위는 살짝의 연분홍색이 띠어졌으며 건물 사이로 반사된 빛이 빛바랜 건물들과도 부딪혀 노란색도 띠었다. 이런 약간의 몇몇 색들이 모여 상하이의 저녁을 알렸다.


절제된 빈티지함과 언발란스한 강렬한 한자간판, 이를 가로지르며 반사되는 자연광까지. 저녁을 마주하던 상하이는 이유 모를 로맨틱을 풍기고 있었다.


태양이 하늘 저편에서의 모습을 감춤에 따라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의 출발시간도 점점 다가웠다. 밤이 되니 난징동루에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점점 많아진 사람이 치여 정신이 없어진 나는 짧지만 강렬했던 난징동루를 뒤로한 채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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