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대한민국, 서울에서
엔트로피 :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적 개념
네겐트로피 : Negative + Entropy의 합성어,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나타냄
엔트로피적인 지난 3년과, 네겐트로피적인 현재.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이 한 권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10월 어느 날,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학교는 오늘부터 안 간다고 말해뒀다. 원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했지만 쉥겐비자(Schengen Visa)가 발급되지 않아 비자 발급이 되는 터키, 이스탄불로 목적지를 틀었다.
지금 막 비행기표를 끊었다. 터키, 이스탄불에 가기로 한 것도 그제였으니 어찌 보면 출발 전날, 오늘 비행기표를 끊는 게 별다른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일본, 중국 편도가 50만 원대로 비행기표가 무지 비쌌지만, 출국 전날에 사니 서울 - 이스탄불 편도를 50만 원 대에 싸게 구매했다. 중국, 상하이 경유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이 안 왔다. 여행이 설레서 잠이 안 온 것은 아니다. 불안도 아니었다. 이유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 불면인 것 같다.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까 봐 늘 마시던 술은 안 마셨지만, 궐련은 태웠다. 보통 하루 담배 반 갑 정도 태웠는데 이때는 밤에만 한 갑을 다 태웠다.
새벽 4시쯤이었다. 은행에서 달러 환전 신청을 하고 여행자 보험도 가입하고, 짐도 얼추 다 쌌다. 쪽잠이라도 자 둬야 상하이에서 뭐라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이리저리 뒤척여 본다.
아침 8시, 전기 신호가 흐른 듯 약간의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 분명 시간은 지나 있으니 잠에 든 것은 맞으나, 중간중간 희미한 기억이 스쳐 간다. 아주 얕은 잠에서 깼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듯하다. 9시에 집에서 떠나면 딱 알맞을 듯하니 마침 잘 깬 것 같다. 방에서 나와 대충 씻고 뭐 빠트린 게 없나 점검했다. 노트북, 카메라, 충전기, 제일 중요한 여권과 신분증까지 빠트린 건 없다. 하지만 희미한 공허와 불안은 있었다. 거실로 나오니 엄마가 토스트를 해놓고 있었다. 프렌치토스트였다. 원래라면 한 개는 고사하고 두, 세 개는 거뜬히 먹었을 텐데 식욕이 없어 그런지 반도 채 못 먹고 남겼다. 엄마가 다 먹고 가라 했지만 무언가를 입에 대기가 싫어 짐을 챙겨 나왔다. 공항버스를 예매하지 못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역까지는 엄마가 배웅해 줬다. 어쩌면 한 달, 그 이상 동안 아들 녀석을 못 보지만 엄마는 의외로 조용했다. 늘 칠칠찮다고 하던 잔소리는 한마디도 안 꺼냈고 묵묵하고 덤덤하게 날 떠나보냈다. 지하철역 입구, 에스컬레이터 앞. 짧은 포옹을 거치고 난 엄마의 시선에서 떠났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에어사이드(출입국 수속을 마친 후 위치 해있는 면세구역)로 들어왔다. 학교를 안 가고 여행 가는 것에 못마땅 해 하던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늦은 나이에 본 외동아들이 나름 걱정됐나 보다.
"가서 밥 잘 먹고, 낯선 사람 조심하고. 돈 부족하면 연락하고."
"알았어, 시간 될 때 연락할게."
서로 간 통화 시간이 1분이 채 안 됐다. 지극히 남자 둘 간의 통화였다.
"스카이팀 멤버, 중국… 항공에서 상하이로 가는 MUXXX 편 탑승을 시작합니다…"
천장 위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들린다.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중간 경유지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중국 메이저 항공사, 약간의 야릇한 향신료 냄새와 "欢迎登机"("탑승을 환영합니다.")등의 중국어. 중국어 회화가 조금 되던 어렴풋이 들리던 중국어가 반가웠다.
비행기가 유도로로 움직이고, 엔진 시동을 건다. 창가 밖 엔진에는 아지랑이가 핀다.
"띵, 띵"
안전벨트 사인음이 두 번 울린다.
"Cabin Crew, Prepare for Take-Off" ("승무원들은 이륙을 준비하라.")
"Throttle, TOGA" ("비행기의 엔진 출력을 최대로")
어쩌면 한 달, 그 이상의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