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대한민국, 서울에서
엔트로피 :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적 개념
네겐트로피 : Negative + Entropy의 합성어,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나타냄
엔트로피적인 지난 3년과, 네겐트로피적인 현재.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이 한 권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20XX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와 별다를 것 없이 학교 이름도 같고, 위치도 같고. 담임은 다르지만, 수업 때 마주치는 교과 선생은 중학교 때 늘 보던 얼굴이었다. 중학교 시절과 다른 것을 대라고 하면 위에서 말했던 담임, XX중에서 XX고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다. 자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표에서는 최고 등급인 A등급이 주를 차지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몇, 몇 이과 과목에서 잘한다고 소문나 시험기간이면 나한테 물어보러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수학은 제외하고 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1달이 지난 4, 5월쯤이었다. 선생들도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적응했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진도를 쭉쭉 빼고 여러 과목에서 첫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나와 아이들은 저번 3월까지만 해도 학교 적응한답시고 PC방이나 오락실, 신나게 공만 차고 있다가 갑자기 여러 시험이 몰리고, 하루에 한두 시간이면 가볍게 해냈던 과제는 쌓이고 쌓여 아무리 손대어도 줄지 않으니 나와 아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과제는 해냈다. 또 시험 준비한다고 시험공부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또 집에 가 짬짬이 해내었다. 나름으로 열심히 과제와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등학교, 첫 시험을 치렀다. 과목은 수학이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수학은 잘 못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다. 교실에서 공부하다 보면 친구들이 지나가며 “왜 이렇게 열심히 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시험을 쳤다. 사실 시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곱셈 공식 단원의 시험이었는데 단순 연산이 주였다. 나름대로 시험공부는 열심히 했기에 무리 없이 문제는 풀었던 것 같다.
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것 또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오직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시험 점수가 한참 안 나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내 모든 의지가 꺾였다.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던 내가, 또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내 노력에 비해 한참 아래이니 말이다. 사람은 정형화된 수치를 믿는다. 아무래도 주관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모두가 동의하는 객관적 수치이니 그럴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점수가 낙제 수준이니 의지가 꺾이고 삶의 의욕도 모두 꺾여 나갔다.
우울함에 빠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모든 것이 비관적으로 보이고 존재에 있어 의문이 들었다. 예전이었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 일도 그때의 나에게는 큰 질문 덩어리로 존재했고 그 질문의 결과는 늘 비관적이었다. 또 갑자기 숨에 벅찬 때도 많아졌다. 격한 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 단지 찰나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을 때 날카로운 생각이 스치면서 아무리 숨을 들이마셔도 숨이 안 쉬어졌다.
정신건강의학과, 흔히 말하는 정신과에 갔다. 진단명은 공황장애를 동반한 우울증이었다. 약을 타서 먹고 상담 치료도 받았다. 세, 네 번 정도 받았다. 나를 알아간다며 주저리주저리 내 얘기를 상담사에게 내놓았지만 그리 도움은 안 됐다.
4개월 후, 많은 게 달라졌고 많은 게 다를 바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조울증이라는 진단으로 바뀌게 되었고 공황장애는 지속되었다. 다시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는 이유로 밤이 무서운 건 전과 똑같았지만 밤을 이겨내는 법은 달랐다.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생각해 당연하게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술과 담배 없이는 밤을 이겨낼 수 없었다.
밤마다 위스키에 물을 조금 따라 섞어 마셨고 궐련을 태웠다. 밤이 무서운 건 똑같았지만, 술을 마시면 밤이 더 빨리 지나갔다. 또 궐련을 태우면 알 수 없는 불안을 잠시나마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단지 두려운 밤과, 불안한 생각을 이겨내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인간적인 삶 자체로 보았을 때는 더욱 삶을 망가뜨리는 존재였다.
어느 날이었다. 늦은 오후 학교를 하교하고 밖에서 엄마랑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식사 간 이야기 하느라 식탁 주위가 시끄러웠지만 이제는 정말 고요했다. 적막이 흐른다. 내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이 적막을 깼다.
“너 혼자 여행 갈래? 학교는 잠시 쉬고, 좀 오랫동안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우울로 가득했던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정말 많이 여행 다녔다. 해외는 아니었지만, 국내 전국 여러 곳을 다녔다. 부산, 강릉, 전주 등… 심심할 땐 친구들과 날 잡고 인천 앞바다로 놀러 갔고 여름방학에는 친구 셋이서 제주도 바닷가로 놀러 갔다. 중3 때는 꿈이 여행 작가여서 졸업 작품으로 여행 잡지를 발간했다. 이때는 혼자 전국을 여행했다. 여행에 가서 사진 찍고, 글 쓰고 이를 잡지 형식으로 묶어 냈다.
정말로 난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 가는 전날, 어린아이처럼 설레 잠에 못 들고 여행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편히 여행지를 즐겼다. 여행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했고, 별거 없이 어디에 앉아 풍경 보는 걸 좋아했다. 다만 요새는 우울에 가려져 이렇게 사랑하던 여행을 마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렇게 우울에 숨겨져 있던 ‘여행’이라는 단어는 엄마의 물음으로 다시 들춰지게 되었다. 물음이 끝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흐르는 동안 난 예전의 여행에서의 기억을 떠올렸고 오랜만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아무 의욕도 없었고, 아무 설렘 없이 하루를 버티며 살았지만 오랜만에 들은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다시 설렘을 느꼈다.
정적이 끝났다. 내가 답했기 때문이다.
“가도 돼?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다시 다니고 싶어”
엄마는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알 수 없는 벅참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설렘을 느꼈지만, 아이러니하게 단 몇 초 만에 설렘이 벅참과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명확히 찾아 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