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미숙아들을 향한 가장 완벽한 훈육
너 빌런이야? 정신 차려 진짜.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니지 말고.
순간, 채널을 잘못 돌린 줄 알았다. 익숙한 리얼리티 예능 <나는 솔로> 화면에서 드라마 속 '사이다' 캐릭터 특유의 속사포 훈육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29기 영숙이 영식을 향해 쏟아낸 이 대사는 남녀 간의 대화라기보단, 선생님이 철없는 학생을 앉혀두고 호통치는 장면에 가까웠다.
시청자들은 영숙의 딕션 좋은 '팩트 폭격'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쾌감 뒤에 남는 뒷맛은 씁쓸하다. 명문대 출신의 소위 '엘리트' 남성이 왜 연애 시장에서는 기본적인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빌런'이 되었을까?
영숙의 대사 중 가장 뼈아픈 지적은 이것이다. "가끔은 참을 수도 있어야 해. 넌 지금 참는 방법을 몰라."
언뜻 듣기에 의아할 수 있다. 영식과 같은 고스펙의 모범생들은 학창 시절 졸음을 참고, 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문제집을 풀어 그 자리에 올랐을 테니까. 하지만 영숙이 지적한 '참을성'은 그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그들이 배운 인내가 확실한 보상(성적)을 위한 것이라면 영숙이 말하는 인내는 인간관계의 영역이다. 그것은 타인의 불편함을 감지하고, 나의 욕구(하고 싶은 말)를 기꺼이 삼키는 것에 가깝다. 성적 올리는 법은 배웠으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미처 배우지 못한 똑똑한 미숙아들의 딜레마가 여기서 발견된다.
드라마 속 사이다 발언이 통쾌한 이유는 현실에서 듣기 힘든 '정답'을 작가가 콕 집어 대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얼리티 예능에서 일반인 출연자가 작가보다 더 완벽하고도 속시원하게, 상대를 ‘참교육’하는 이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우리 주변에 '나이만 먹은 어른아이'가 넘쳐난다는 뜻일 테다.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너 돈 벌고 다닌다면서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가르쳐주지 않으면, 관계가 굴러가지 않는 소통 불능의 시대라는 뜻. 영숙의 샤우팅은 그래서 통쾌하면서도 슬프다. 낭만적이어야 할 연애 예능에서조차 상대의 인격을 과외 선생님처럼 교정해줘야 하는 피로감이 화면을 뚫고 전해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