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라는 가정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진짜 이유

*스포 있습니다.

by 소서


영화 속 정원(문가영 분)과 은호(구교환 분)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한 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이다. 하지만 이 달콤한 가정의 끝에는 대개 서늘한 현실이 기다린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겠지만, 결국 두 사람은 꿈을 포기한 채 서로의 곁에서 조금씩 지쳐갔을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일이 주는 압박에 치여 서로를 원망하고, 한때 유일한 구원이었던 '우리'라는 이름이 어느덧 서로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에'라는 가정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고 오직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멜로 영화들이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함께하는 '결속'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각자의 성취'를 위해 이별을 수용하는 현대적인 연애관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결국 손을 놓았기에 비로소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한 시절 서로를 뜨겁게 지탱해주었으나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보면 이것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한 '능동적 선택'에 가깝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곁에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기꺼이 타인이 되기를 선택하는 이 역설적인 방식이 도리어 각자의 삶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랑을 무너뜨리는 건 사람이 아니라 '생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영화에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구체적인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갈라놓은 유일한 장애물은 거창한 비극이 아니라, 상사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선택한 퇴사나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에서 오는 박박감, 그리고 둘이 미래를 꿈꾸기엔 턱없이 좁은 자취방 같은 ‘생활의 비루함’이다. 영화는 사랑만으로 덮을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냉정한 풍경을 집요하게 비춘다.


현실의 무게는 낭만을 아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잠식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별을 택하는 과정은 그래서 더 뼈아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들의 이별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에는 현실의 토대가 너무나 위태로웠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가라앉는 대신 각자 떠오르는 것을 택한 이들의 결정을 누가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재회의 환상을 깨는 꽉 닫힌 결말


영화적 서사 구조 측면에서도 이들의 이별은 필연적이다. 만약 영화가 두 사람의 극적인 재회로 끝을 맺었다면, 그것은 흔한 판타지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은호가 이미 유부남이 된 설정을 보여줌으로써, 일말의 재회 가능성조차 남기지 않는 '꽉 닫힌 결말'을 암시한다.


이 냉정한 설정은 역설적으로 관객에게 기묘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재회의 환희 대신 각자의 삶에 충실한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이별로 마침표를 찍은 사랑은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박제된다.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늙지 않는 기억. 두 사람의 서사는 이별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하게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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