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주인공 양희는 어느 날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이런 순간이 양희에게만 찾아오는 건 아닐 것이다. 현실에서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은 늘 갑작스럽다. 밥 먹다가 씹는 소리가 거슬리거나 별것도 아닌 말투에 괜히 짜증이 나거나.
분명 처음엔 그게 다 귀여웠는데,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틈이 벌어진다.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그러다 결국 헤어지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늦은 밤 술에 취해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고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수없이 대화창을 확인하고, 주변 친구한테 "걔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본 순간들까지. 이런 흑역사 하나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 연애는 설레는 만큼 구질구질하다. 넷플릭스 <월간남친>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가상의 남자친구를 구독하는 세계관의 이 드라마에선 상처도 없고 오해도 없고 새벽 세시에 "자니?"라는 카톡도 없다. 마음에 안 들면 해지하면 그만이다.
<월간남친> 스틸컷
드라마를 집필한 남궁도영 작가는 이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인간이 인간을 구독한다는 게 와닿지 않아 글을 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다 '만약 상대가 AI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고, AI와 가상현실, 연애를 엮으면 "굉장히 동시대적인 로맨스 드라마가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동시대적. 이 단어가 핵심이다.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건 기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연애를 피하는 방식이다.
드라마는 세 여자를 통해 그 방식을 펼쳐 보인다. 주인공 미래는 이전 연애에서 상처를 받고 가상 연애 서비스에 접속한다. 반면 윤송은 서비스에서 점점 깊은 위안을 찾고, 지연은 처음부터 서비스를 게임처럼 즐긴다. 감정 투자 없이, 가볍게, 소비하듯.
작가는 이 세 인물을 "자발적으로 연애하지 않는 여자, 연애를 하고 싶지만 못 하는 여자, 열정적으로 연애하는 여자"로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셋 중 누가 옳은지 드라마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윤송이 틀린 게 아니고, 지연이 가벼운 게 아니다. 연애를 피하거나, 대체하거나, 소비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며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중 하나인 미래를 주인공으로 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집필 과정에서 읽은, 데버라 리비의 에세이 <살림 비용>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이 답을 대신한다. "사랑과 거리를 둔다는 건 위험 부담이 없는 삶을 산다는 의미다. 그런 삶을 살아 뭐 해?" 그 순간, 이 이야기가 "인간과의 연애에서 생기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월간남친> 스틸컷
가상 연애 서비스의 본질은 리스크 제거다. 상대는 나에게 맞춰져 있고, 갈등은 설계되지 않았으며, 내가 변할 필요도 없다. 완벽하게 편안하다. 그런데 그 편안함에는 대가가 있다. 김정식 감독의 말처럼 "서로가 조금씩 맞춰가고, 실제 감정을 교류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면 가상 연애에는 그 과정이 없다. 마찰이 없으니 변화도 없고, 불편함이 없으니 이해도 없다. 그렇게 보면 구질구질한 순간들이야말로 관계가 깊어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미래가 결국 현실을 선택하는 건 가상 현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불완전한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드라마를 "일상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할 용기를 찾는 이야기"라고 했다. 연애에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는 것, 그게 지금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월간남친>은 가상 연애를 꿈꾸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 꿈이 왜 생겨났는지를 들여다보고, 그럼에도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어떤 선택을 하든 틀리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는 이렇게 묻는다. 리스크 없는 삶을 살아서, 뭐 해?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