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리랑'부터 드라마까지, 세계로 흐르는 '한'

by 소서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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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노래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소환된다. BTS의 신보 수록곡 '에일리언스'의 한 대목이다. "김구 선생님, 기분이 어떠신가요" 역사에 남은 이에게 질문을 건네는 이 장면은 오래된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대신해 말하는 사람, 대리인의 역할이다. 김구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 문화의 힘을 가장 갖고 싶어했던 사람이 미처 누리지 못한 것을, 지금 BTS가 실현하고 있다. BTS의 이번 앨범 <아리랑>에는 한국적 요소가 깊숙이 새겨져 있다. 첫 트랙 '바디 투 바디' 후반부에는 아리랑 선율이 흐르고, 'No.29'에는 선덕대왕신종의 타종 소리가 울린다.


앨범명인 '아리랑'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본래 아리랑은 전국을 유랑하던 소리꾼들이 고개를 넘으며 부르던 노래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이별과 기다림의 정서가 켜켜이 쌓이며 민족의 노래가 된 것인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빼앗긴 것들에 대한 한이 그 위에 덧입혀졌다. 그리고 BTS는 이별과 기다림, 한이 쌓인 '아리랑'을 21세기 음악의 문법으로 재해석해 우리 앞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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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SBS


장르는 달라도 질문은 같다. BTS가 음악으로 대리인의 자리를 채웠다면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그 질문을 법정으로 가져온다. 법정은 현대 사회가 억울함을 해소하도록 설계한 공간이고, 변호사는 말 못 하는 자를 대신해 발언하도록 제도가 허락한 사람이다.


여기에 '귀신 보는 변호사'라는 독특한 설정이 결합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단순한 오컬트 장르물이 아니라 해원의 현대적 형식이 된다. 망자의 억울함이 법정에서 풀리는 순간, 시청자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오래된 감각이 자극되는 카타르시스다.


두 콘텐츠가 나란히 놓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다. 한의 정서는 슬픔이나 체념이 아니라, 하나의 에너지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은 채 쌓인 그 힘이 시공간을 넘어 대리인을 불러낸다.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혼자 울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넋은 스스로 풀리지 않았고, 누군가 대신 나서야 했다. 무당이 신을 불러 망자의 말을 전했고, 광대는 판소리로 민중의 맺힌 울분을 풀었다. 한(恨)이라는 정서는 언제나 중재자를 필요로 했고 오늘날에는 K콘텐츠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K콘텐츠가 '한'이라는 오래된 정서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은 향수나 전통 계승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감각. 개인의 억울함이든 민족의 상처든, 누군가 대신 나서주기를 기다리는 목소리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응답이 전 세계 관객에게 닿는다는 사실은 그 '한'이 한국인만의 정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Pardon 김구 선생님"이라는 가사 한 줄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은 소환됐고 무대는 세계로 열렸다. 대리인의 계보는 계속될 것이다.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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