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론]다양한 서정의 미학

-행복한 시 읽기

by 니르바나

월간 [문학공간 ] 2018. 3월호

[연재 시론] 행복한 시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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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서정((抒情))의 미학

-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시는 인류의 축복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시는 인류가 끊임없이 진화해온 결과물 중 가장 상위의 개념일지 모른다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은 생존을 위해 일하고 남은 에너지를 즐기기 위해 사용한다 유희는 단순히 즐긴다는 의미만 아니다 정신적인 창조활동을 포괄 한다 풍부한 상상력을 통하여 예술적 창조를 구현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의 언술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세상을 ‘자아화’ 하는 능력은

시인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그가 창조해낸 세계는 눈앞의 세상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낯설게 말하기‘를 통해 현실과는 차별화된, 그럴듯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호한 중얼거림을 쏟아낸다 독자에게는 마치 수수께끼나 미로 찾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시는 처음부터 이해를 거부하는 것인지 모른다 엘리엇은 시란 “이해되지 않고서도

전달할 수 있다“는 말로 옹호 한다 몬탈레는 한 술 더 떠서 시의 본질이 ‘이해시키는데’ 있다면 그 누구도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니 시를 너무 이해하는데 힘쓸 필요는 없다 그냥 느끼고 어렴풋이나마

고개를 끄덕이면 될 것이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우리던지 아예 풍덩 빠져본다면 색다른 즐거움을 건져낼 것이다.

좀 더 꼼꼼하게 읽기 위해서는 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시어는 일상적 언어와

차이가 있다는 것, 즉 함축적이고 다의적이라는 사실, 그의 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종 수사법을 활용한다는 것, 그 외에도 시의 구조와 특성을 이해하면 좀 더 행복한 시 읽기가 될 것이다 주체의 정서표출에 주안점을 둔다면 일단 서정시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같은 서정시라 할지라도 전통 서정시와 모험적(실험적) 서정시로 대별 된다

전통 서정시는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추구하는 경우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을 일률적으로 매개하므로 정합적(正合的)이다 특징은 반듯한 균제미와 교훈적 모범을 보이는 따뜻한 서정을 중시해서 서정시의 본령으로 통한다.


모험적 서정시는 기존의 전통이란 교범적(敎範的) 양식에 반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체와 세계의 반란에서 비롯된다 화자와 그의 진술로 이루어진 세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정합적이다 세상의 원리와 주체의 원리 사이에 괴리가 발생 한다

때문에 응축과 긴장 참신 충격 기괴의 낯설음을 주지만 단절과 같은 소통의 어려움을 감내해야하는 모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해의 출발인 새해, 우리의 전통 세시풍속을 따르면 설날이 기준이 된다

그래서 새해와 설날을 주제로 한 시편들이 많은 것은, 그 특별한 의미 때문일 것이다 출발점에 서서 시인은 어떤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우선 기발한 착상이 흥미롭다 ‘황새’ ‘거북’ ‘달팽이’ 등 각기 다른 속도를 가진 동물을 병렬적으로 등장시킨다 세상의 원리로는 비교불가의 비등가물이다 하지만 시속의 화자는 비교가능한 등가물로 취급 한다 속도가 다른 각각의 개체들이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한 것으로 판정을 내린다 그것도 맨 마지막의 선수를 ‘바위’로 등장시킨 것은 놀라운 말상이다 속도 제로인 바위(무생물)가 속도를 가진 것과(생물)는 애초에 비교불가능인 때문이다.


속도에 목을 매는 현대의 속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날짐승이나 길짐승이나 심지어 바위까지도 속도에 초연하다 이런 자연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보여준다 세상의 원리와 주체의 원리 사이에 괴리가 발생 한다 주체와 세계의 반란(?)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지만 너무 작위적이란 느낌을 준다.



해 뜨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누님같은 소나무가 빙그레 웃는

새해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맑은 연꽃대에 앉은 햇살 하나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당신의 창을 두드리고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사랑하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다시 길을 가게 합니다

(중략)

-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정호승)


이 시의 주체는 ‘햇살‘이다 해살은 밝음의 편이고 어둠의 반대편이다

햇살은 시적 화자의 분신이며 선(善)의 상징이다 그 새해의 아침햇살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대리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당신의 창‘을 두드리는 따뜻한 손길이 된다 나아가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비의 화신이 된다.


비교적 단순한 비유로 되어있는 밝고 따뜻한 서정시, 새해를 맞으면서 소외된 이웃, 사람과 사람의 단절, 삭막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따뜻한 햇살을 통해 그 단단한 삭막함을 녹이고자한다 그늘에 묻혀서 위축되고 찌들었지만 햇살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웅크린 본성을 일깨운다 특별한 무장(?)을 하지 않고서도 율격과 맥락을 따라가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지는 그런 소박함, 보편적 감성으로 대중독자의 공감을 사는 데는 유리하다 하지만 화자의 진술이 너무 장황하고 고답적인 것은 오히려 ‘옥의 티‘가 된다.


아침마다 길을 나서며

시린 손으로 가슴을 부비는 사람들을 위해

착한 마음 하나

고샅길 돌담에 걸어두자.

삶을 여민 옷깃 속에서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위하여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을 위하여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깊고 처절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마음 하나 걸어 두자.

아침의 맑고 진정한 작은 마음의 기도를

응답하는 이가 들으리니

오늘 하루 사립 밖 움츠린 거리에

간절한 마음의 작은 촛불 하나 걸어두자.

(중략)

-착한 마음 하나 걸어두자 (정 순 영)


시 속의 화자는 ‘걸어두자’와 같은 겸손 묵상 경건한 어조로 말한다

독백형식의 서원(誓願)이면서 세상을 향한 기원이다 ‘시린 손’은 상대적 약자다 비록 옹색하지만

유혹에 굴하지 않는 의인이거나 소외된 이웃, 화자인 나보다 더 ‘외롭거나 괴롭거나

가난한‘ 자이다 그를 위해 기꺼이 보내는 자애의 기도이자 자신을 향한 질책이다.

그 간절함은 병렬적 점층적으로 전개 된다 ‘걸어두는‘의 대상이 착한 마음에서 ’작은 촛불‘로 변환되면서

더욱 승화 된다 기도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우리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이 된다 온갖 차별과 역경의 짐을 진 이웃에 대한 이타적 구원(救援)의 각성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묵상 자책 기도가 어우러진

독백의 어조가 경건함 간절함으로 공감의 깊이를 더해준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중략)

-설날 아침에/ (김종길)


새해를 맞아 세상에 던지는 시인의 소회거나 덕담이다 화자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맞을 일이다’처럼 오랜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담담한 어조로 경구와 같은 여유와 미덕을 드러낸다 ‘추위 속에’와 ‘따스하게’ ‘얼음장’과 ‘봄날’의 대비를 통해 역경 속에 희망의 미래가 있슴을 상기시킨다.

평이한 비유와 대구법, 긍정적인 시각으로 온기와 희망을 불어넣는다 눈앞의 세상은 각박하고 암울한 것일지라도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정반대다 뭔가 뒤바뀐 느낌이다 시가 거칠고 못마땅한 것일지라도 실제 세상은 밝고 ‘살만한‘ 그런 것이라면,


모를 일이다 사정이 뒤바뀐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새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시인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향해, 자신만의 목소리로 할 말을 하는 것이다 마치 부여된 사명을 수행하듯,

시인의 메시지에 답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좀 더 귀를 기우리고 드러난

표의적 문맥 이외 감추어진 문맥까지를 읽어내는 독자는 더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새겨둘 말이 있다 시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느끼고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


▶이글은 필자의 미디어 발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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