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은 세수를 하다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참 못생겼다. 못생겨 보이는 건 밀지 않은 수염 때문일까? 평소보다 정성스레 구석구석 수염을 밀어 본다. 흠, 그래도 별로인데. 혹시나 싶어 삐져나온 코털도 뽑아보지만 영 탐탁지 않다. 우성은 세면대에 양팔을 짚고 생각에 잠긴다.
'마지막 섹스가 언제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10년 전? 기겁을 하며 놀라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다. 섹스는 그러니까 100만 원짜리 오마카세 같은 거다. 돈이 없으면 못 먹는 거고 있다 한들 굳이 먹을 필요도 없다. 뭐 누가 사준다고 하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여태 몇 명이랑 해봤지...'
우성은 물 묻은 손을 탁탁 털고 티셔츠에 대충 닦은 뒤 손가락으로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총 여덟. 우성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덟 명과 잠자리를 했다. 거울로 자기 얼굴과 8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번갈아본다. 이렇게 못생긴 사람과 섹스를 하다니. 얼굴각도를 이리저리 바꿔봐도, 가르마를 반대쪽으로 타봐도 못생김 정도에 변화는 없다. 왠지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내가 여자였다면 나같이 생긴 놈이랑은 밤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우성은 자신과 잤던 여자들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물어보고 싶은데. 어쩌면 성격이 쿨한 ‘셋’에게는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와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았으니.
“가게로 와.”
몇 년 만의 통화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다. ‘셋’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녀는 두 학번 밑의 후배다. 예쁘고 붙임성도 좋은, 요즘 말로 하면 인싸였다. 굳이 단점 하나를 꼽으라면 ‘셋’은 술을 너무 사랑했다. 늦은 시간 학교 앞 골목을 지날 때면 항상 그녀의 술기운 가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졸업 후 자주 가던 닭발집에서 2년 정도 일을 배우더니 아예 가게를 인수해 버렸다. 이유에 대해 물으니 술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돈까지 벌 수 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몇 년 전 동기 몇 명과 놀러 간 그녀의 가게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시급 두 배로 주고 예쁘장한 애들 몇 명 뽑으면 끝이야. 술과 대학생활은 불가분리잖아? 우리 학교가 망하지 않는 이상 난 망할 일 없어 선배.”
예쁜 학생들이 손님으로 오면 안주도 공짜로 내어주고 페이백도 해준다고 하니 그녀의 장사수완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리 편한 ‘셋’이었지만 몇 년 만에 만나는 건데 대충하고 나갈 순 없었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언제 샀는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아직까지 반이 넘게 남아있는 리스테린으로 입도 헹궈 본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옷장에 들어가니 그때부터 숨이 턱 막힌다. 입을 옷이 이렇게나 없었나. 우성은 데이트레이더가 되고 나서는 단 한 벌의 옷도 사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니 자연스레 옷도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네이비 색 셔츠를 골라 흰 바지와 걸쳐보니 그래도 사람 같아 보였다. 우성은 선크림을 바르려다 잠시 멈추고 앞뒤로 유심히 살핀다. EXP 2023.05.02. 우성은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폐기했다. 향수도 오래되긴 매한가지였지만 피부에 닿지 않게 뿌리면 되잖아?라고 생각하며 대충 옷 주위에 칙칙 뿌리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탄 우성은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메신저 친구창을 주욱 내려봤다. 혹시나 카운팅에서 빠진 여자들이 더 있진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내려봐도 카운팅은 8에서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10명쯤은 됐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청춘에 사죄하던 우성의 눈에 한 남자이름이 들어왔다. 신지호. 우성의 군대 후임이다.
우성은 또래 남성들이 왜 그렇게 육체적 관계에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숭고한 행위는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던 우성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입대했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루 종일 섹스 얘기만 해대는 훈련소 동기도,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에 밤낮으로 울던 선임도.
분대장을 달았을 때 소대에 신병이 들어왔다. 못생긴 얼굴에 고졸인 그는 일도 못하고 운동도 못했다. 그야말로 군대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표본. 우성은 내심 신병을 아래로 보고 있었다. 눈치마저 없는 신병은 입을 쉬는 법이 없었다. 밖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입대한 지는 모르겠으나 심심한 후임이 되면 죽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동 간이나 근무를 설 때만큼은 심심하지 않았는데 지호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든지 끝은 무조건 섹스와 관련된 것으로 끝났다. 때문에 우성은 그를 단순한 허풍쟁이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익살이 지호만의 생존전략이라고 생각되어 측은하기도 했다.
하루는 지호가 분대장인 우성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면회 오겠다는 친구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계급이 낮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우성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지호를 동정하고 있었기에 면회 정도는 분대장의 힘으로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런 일 있으면 맞선임한테 말하지 말고 바로 나한테 말해. 괜히 네 선임들 거치면 나까지 안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옙! 감사합니다. 분대장님 근데 여자친구는 있으십니까?”
“일병 때 헤어졌어. 너도 조심해 일말상초라는 말도 있잖아.”
연애경험은 없었지만 우성은 괜한 자존심에 거짓말을 했다.
“일말상초가 무슨 뜻입니까? 제가 사자성어는 잘 몰라서.”
뭐지. 때 지난 유머인가?
“아... 사자성어가 아니고 일병 말, 상병 초에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야.”
“그러면 여자친구 면회 왔을 때 섹스는 어디서 하셨습니까?”
잠깐. 여자친구가 면회 온 적 있는지, 면회 온 여자친구랑 섹스를 한 적 있는지 물어보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나? 두 단계나 뛰어넘은 질문이라니. 우성은 지호의 아둔함에 머리가 띵했다.
“코인노래방.”
당시 군 복지 시설로 코인노래방이 들어온 참이라 대충 둘러댔다. 생각해 보면 분리된 공간에 방음까지 되니 섹스하기엔 참으로 최적의 장소였다.
“역시 분대장님이십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로 지호는 매주 면회가 있었다. 그것도 여자들로만. 허풍이라고 생각했던 지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호는 매주 다른 여자들과 코인노래방에서 섹스를 했다. 그리곤 매번 우성에게 고맙다며 여자친구들이 뇌물용으로 사 온 던힐 라이트 한 보루를 쭈뼛거리며 건넸다. 우성은 자신보다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지호가 먼저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자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우성은 치졸하게도 그나마 지호의 여자친구들이 뛰어난 미인이 아니라는 점을 위안 삼았다.
제대 전 마지막 경계근무를 앞두고 지호가 보이지 않았다. 우성은 괜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후임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혼자 막사 이곳저곳을 살폈고 혹시나 싶어 들린 막사 밖 공중전화에서 지호를 찾을 수 있었다.
“야! 여기서 뭐 해. 근무 가야 하는데.”
“앗 도 병장님. 안 그래도 복귀하려던 참입니다.”
지호가 불쾌한 슬리퍼 소리를 내며 우성 쪽으로 뛰어왔다. 전투복에 슬리퍼라니. 간부에게 걸리면 한 소리 듣기 딱 좋은 복장이다. 우성은 이를 지적하려다 왠지 평소와 다르게 침울한 표정의 지호를 보고는 그만두었다.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별 거 아닙니다. 나중에 근무 설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우성은 장비와 복장을 갖추고 지호와 근무지로 가 전 근무자와 교대했다. 지호는 군화로 땅을 의미 없이 몇 차례 쓴 뒤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말입니다. 집에 일이 생겨서 급하게 전화 좀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데.”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해서 말입니다.”
우성은 아까 지호의 복장에 대해 지적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지호는 부모님의 이혼에 그리 충격을 받은 것 같진 않았다. 지호의 말에 따르면 예전부터 부모님 사이는 위태위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혼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딱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가 술 한 잔 주시면서 얘기해 주셨는데, 대학교 때 어머니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4년 동안 쫓아다녔답니다. 이 사람이 내 평생의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답니다. 어떤 점 때문에 그러시냐고 물어봐도 “너도 결혼해 보면 다 알게 될 거다.”라고만 말씀하시고 정확하게는 언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서로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든 같이 살기로 합의를 보셨던 것 같은데 결국은 갈라서게 된 것 같습니다.”
씁쓸하게 말을 마친 지호는 지갑에 있는 아버지 사진을 꺼내 우성에게 보여줬다. 세월이 물씬 묻어 나오는 사진 속 지호의 아버지는 당시 유행했던 가르마 장발에 네모난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우성은 왠지 모르게 자신과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잘 생기셨네.”
“에이, 그렇게 말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무리 제 아버지지만 못 생긴 건 못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빈 말로 한 거 아냐.”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희 아버지가 잘 생겼으면 제가 이렇게 태어났겠습니까.”
우성은 지호가 자신의 아버지를 못 생겼다고 하는 말이 꼭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져 괜스레 기분이 나빴다.
근무를 끝내고 잠에 든 우성은 악몽을 꿨다. 평생의 연인을 찾아다니던 우성은 결국 80이 될 때까지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고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판단, 전국에 유명한 사창가를 찾아갔지만 이미 폐쇄되어 있었다. 그렇게 총각으로 생을 마감하고 관에 갇히기 직전에, 이렇게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고 관을 걷어차며 일어나자 깜깜한 내무반이었다. 모포가 우성의 발끝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우성은 싱숭생숭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러 내무반 밖으로 나갔다.
섹스라. 우성은 경험도 없는 자신이 섹스에 대해 가타부타 생각하는 것도, 초연한 척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섹스는 아주 굉장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섹스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우성은 7살 터울의 형이 생각났다. 서른이 되었지만 집에 박혀 밥만 축내는. 형은 섹스란 걸 해봤을까? 비만에 탈모에 나보다 못생긴 얼굴까지. 아마도 형은 아직 경험이 없을 것이다. 언젠간 커뮤니티에서 마흔 살이 넘었는데도 경험이 없는 사람의 인생한탄을 보고 가볍게 웃어넘기며 분명히 거짓으로 작성된 글일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오타쿠 백수 형을 보면 그 글, 아주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비단 형뿐만이 아니다. 섹스를 한 번도 못 해보고 죽을 운명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과연 나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우성은 한 여름이었지만 한기가 느껴져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대하는 날 소대 인원들이 우성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였다. 우성은 그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여기서 절반은 나보다 떨어지는 놈들인데, 너희들도 해본 걸 내가 못 해 볼 순 없지.’ 우성은 위병소를 나가며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섹스할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잡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