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 중학교 동창이 살고 있었다
2편 : https://brunch.co.kr/@sosim-in/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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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반이 넘어갈 때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출발 일주일 전부터 '버스에서 누구와 앉을 것인가'가 나의 큰 고민이었다. 하필 친했던 무리가 나를 포함하면 5명이었기 때문에 두 명씩 앉으면 한 명은 무리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과 앉아야 했다. 그렇다고 사전에 무리 중 한 명에게 같이 앉자고 말하기도 모호했다. 왠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이미 같이 앉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런 사소한 일 따위는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앉기로 마음먹었다. 경주행 버스가 운동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 누구랑 앉느냐 따윈, 아니 수학여행 따윈 관심에도 없는 척 헤드폰을 끼고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을 생각이었다.
수학여행 당일, 경주행 버스가 줄지어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오며 황색 먼지를 일으켰다. 나는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맨 앞에 줄을 섰다. 누군가 내 의도를 파악하고 관찰하고 있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저릿거려 식은땀이 흘렀다. 담임선생님의 호령에 맞춰 인원체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제일 먼저 오른 것까진 좋았는데 어디에 앉느냐가 문제였다. 어리석게도 이 중요한 걸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다니! 선두 실격이다. 우선 버스 뒷칸으로 갈수록 일진들의 자리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기 때문에 내 위치에 걸맞은 적절한 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었다. 맨 뒷좌석과 그 앞 칸까지는 절대로 앉아선 안 될 것 같았고 두 번째 칸은 조금 애매했다. 그렇다고 세 번째 칸에 앉기는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아마 2.5번째 칸이 있었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에 앉았을 것이다.
짧지만 긴 생각 끝에 내린 선택은 두 번째 칸이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 재빨리 헤드폰을 뒤집어쓰고는 당시 빠져 있던 메탈 노래를 볼륨 높여 튼 뒤 눈을 감았다. 뒤이어 오르는 친구들의 발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들로 버스는 점점 시끄러워져 갔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친분 및 관계를 고려하여 ‘누구는 누구와 앉았겠지.’하며 나만의 좌석배치도를 만들어 갔다. 시험이라도 되는 듯 몇 번의 검산 끝에 완벽한 좌석배치도를 만든 뒤 채점을 위해 눈을 떴는데 놀랍게도 내 옆자리에는 응당 맨 뒷자리에 있어야 할 창수가 앉아 있었다. 창수는 "피곤했나 봐?"하고 말을 걸고는 재차 무슨 노래 듣냐고 물었다. 헤드폰을 반쯤 벗고 Skid row와 LA메탈에 대해 설명해 주자 시큰둥하게 듣던 창수는 “헤비메탈이랑은 다른 건가?”하고 혼잣말을 하더니 대뜸 자신이 입고 온 폴로티셔츠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서면지하상가에서 현지가 골라준 옷인데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잘생겨서 뭐든 다 잘 어울린다고 답하자 창수는 고맙다며 껌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동하는 내내 하필 창수의 옆자리인 탓에 일진들 대화 바운더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낀 것도, 안 낀 것도 아닌 모호한 상황에서 일진들이 가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따위의 동의를 구하는 것에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창수가 초등학교 때 멀미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버스 맨 뒷좌석에는 못 앉는다는 것과 몇몇 일진들이 프링글스 통에 술을 몰래 숨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소지품 검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걔네가 걸려서 혼이 나든 말든 알 바 아니었지만 현지도 술을 가져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힌 마당에 술까지 걸리게 되면 어떤 징계를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창수야, 너네들 술 가져온 거 내 가방으로 옮길래?"
당신들이야 관심대상이니 소지품 검사를 받겠지만 나름 모범학생인 나는 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논리였다. 스스로 폭탄을 짊어지겠다는 나의 제안은 당연히 채택되었다. 유스호스텔에 버스가 도착하고 인원체크 등으로 어수선한 틈에 일진 무리와 나는 버스 뒤에 숨어 짐을 바꿔 담았다. 실제로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학급마다 요주의 인물 몇 명의 가방을 검사해 술을 압수하는 일이 있었기에 나는 잠시나마 영웅이 되어 우리 반 일진들의 추앙을 받았다.
낮에 불국사를 보고 돌아온 우리는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12시가 넘어가자 일진들은 빈 방 하나를 찾아 술판을 벌였다. 창수는 내 공덕을 잊지 않았는지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수학여행에서 술 한잔 하는 정도의 불량함은 훈장으로 가지고 싶었기에 기꺼이 창수의 뒤를 따랐다. 술판이 벌어진 방엔 우리 반 일진들과 소수의 다른 반 일진들이 섞여있었다. 창수가 다른 반 일진들에게 나를 소개하자 그들은 낮의 소지품 검사 얘길 들었다며 조용히 박수를 쳐주었다. 내 전략에 대한 보상은 미지근한 맥주 한 캔이었다. 생애 처음 맥주를 건네받고 들이켰는데 쓰기만 하고 맛이 없어 마시는 척만 하며 그들과 적당히 어울렸다.
침묵의 공공칠빵 게임이 지겨워질 때쯤 남자아이들은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했다. 내가 비흡연자라고 하자 내게도 흡연을 권했지만 담배까지 피우는 불량함은 원하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남자 일진들이 떠나고 방에는 나와 우리 반 여자일진 4명만이 남게 됐다. 우리 학교 여자일진은 '미스세븐'이라는 이름 아래 7명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 현지를 포함해 4명이 우리 반이었다. 여자일진 중 리더 격인 A가 화장실을 쓰려고 하니 내게 잠시 나가있어 달라고 해서 문 밖 통로에 앉아있었다. 혹시나 선생님한테 걸리진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에서 우당탕탕 하더니 비명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현지가 나머지 3명 A, B, C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었다. 현지의 옷은 속옷이 드러날 정도로 찢겨 있었고 좌측두부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 흔적들로 봐선 술병으로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창수에게 달려갔다. 상황을 설명하자 창수와 그의 무리들은 피우던 담배를 땅에 던져버리고는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나는 경주가 끝난 말처럼 양팔을 무릎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어느 정도 진정된 다음엔 다 꺼져가는 담배꽁초나 짓이기며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 반 소식통 성규의 말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러했다. 창수를 중학교 입학 때부터 좋아했던 A는 현지가 창수와 사귀게 되자 창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헤어질 것을 종용했고, 현지가 거부하자 같은 B초등학교 출신이었던 A, B, C가 합심해서 현지에게 린치를 가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현지는 등교를 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은 항상 얇은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도덕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예전 담임선생님은 아마 학생관리가 미흡했다는 점 때문에 징계를 받은 모양이었다.
린치사건 이후 현지와 만나게 된 것은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주번이었던 탓에 남들보다 일찍 등교한 날, 나보다 먼저 와 짐을 챙기고 있는 샛노란 머리의 현지와 마주치게 됐다. 현지는 내쪽을 흘깃 보고는 무심하게 인사했다. 당황한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짐을 다 챙긴 현지는 가방을 메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이번 주 주번이거든."
"나 이제 학교 안 다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버벅거리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내 팔뚝을 한 대 쳤다.
"휴대폰 줘 봐. 사진 한 장 찍자."
휴대폰을 건네자 현지는 오른손을 쭉 뻗어 나와 자신이 한 프레임에 담기도록 사진을 찍었다. 찍기 전에는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V를 하고 있는 그녀의 왼쪽 손목에 타투가 있었다. 팔이 접히는 부분에는 필기체로 뜻 모를 영문의 레터링도 있었다. 현지는 실물보다 못나게 나왔다며 내 휴대폰 카메라 기능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는 교실을 떠났다. 여기까지가 그녀와 나의 인연이다. 그 뒤 고등학생이 되고 몇 번인가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역에서 유명한 남자선배와 사귄다더라 따위의 소문에 현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현지가 학교를 떠나고 공석이 된 창수의 옆자리는 A의 바람대로 A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명으로는 부족했는지 창수는 차례로 B, C를 건드렸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A, B, C의 관계 또한 틀어지게 되었다. 2학기의 어느 날 창수는 폭력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김해 쪽으로 전학을 가게 됐는데 당시 부산 내 고등학교에서 입지가 있던 A의 오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우리들 사이에서의 정설이었다.